며느리의 남편
2013-03-08 (금) 12:00:00
인간과 동물의 차이는 너무나 크고 그 종류도 다양하다. 그 중 근본적 특색의 하나가 어린아이의 양육 기간이 동물과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길다는 것이다. 양육 기간이 길다는 것은 앞으로의 상호 관계 역시 길어지리라는 뜻이기도 하다.
인간은 남녀를 불문하고 태어나면서부터 생존권, 자유권, 평등권을 신으로부터 받아 가지고 나와서, 내가 여기에 이렇게 나왔노라! 하며 두 주먹 불끈 쥐고 세상에 온 힘을 다해 외친다. 그때의 엄마로서의 자부심은 어떠했는가! 대부분의 여성들은 산고의 고통을 느낀다. 아이의 이 울음소리에 입술이 쩍쩍 갈라지던 고통은 사라지고 그저 새 생명의 탄생에 기뻐 어쩔 줄을 모른다, “그것이 아들이든 딸이든”. 한 생명이 나의 뱃속에서 태어났다는 사실만으로도 신기하고 기쁜 일인데 이 생명이 사내아이라면 이 신비가 장시간 이어지지만 만일 여자아이라면 별 것 아닌 것으로 취급되기도 한다. 몇년전 하버드 대학교의 여자 총장의 말이 생각난다. 남자의 머리는 보편적으로 수학과 과학적인 면에서 여자보다 월등하다고 했다. 조금은 혼란스러운 말로 들리기는 했지만 세계적인 석학의 지론이니 믿을 수밖에…. 그후 몇몇 학자가 공동으로 남녀 학생들을 대상으로 연구한 결과 그 말은 전혀 근거가 없는 사실로 증명이 되어 이 총장의 입장이 아주 난처해진 일이 있었다.
자기도 여자이면서 편협적 발언을, 그것도 학자가 되어 제대로 연구조차 해 보지도 않고 세상을 놀라게 했으니 참으로 놀라운 일 이었다. 사람이 생활하며 살아가는 동안 가장 중요한 것중 하나가 사물을 편견 없이 직시하느냐, 편견을 가지고 보느냐 하는 것이다. 딸과 아들, 내자식이라는 면에서는 다른 점을 찾을 수가 없다. 다만 결혼을 시켜놓고 보니 딸은 성이 달라졌고 아들은 그대로 같은 성을 사용한다는 것 외에는 다른 점이 없다. 내면적인 관점에서 보면 딸과는 소통이 좀 되는 편이나, 아들과는 다르다는 것이다. 아들과의 소통은 며느리라는 중간체가 끼어 있어 무슨 말을 하고 싶어도 눈치가 보아진다. 저희들끼리 상의해서 잘 헤쳐 나가게 내버려 두라는 남편의 말에 기가 죽어 버린다. “결혼을 시킨 아들은 그 순간부터 더 이상 내 아들이 아니다. 그저 며느리의 남편으로 생각하며 살아 가면 세상이 다 조용하고 편할 텐데 왜 구태여 아들, 아들하며 힘들게 살아가려고 하는지...“ 하는 남편의 말에 동의를 하니 마음이 참으로 편하다.
아들이라 믿었는데! 하는 원망 어린 한탄을 하기 전에, 부모의 모습은 무엇일까? 하고 고민 해 보자, 아들이 성공의 가도를 힘차게 달리고 있다 해서, 남들 보다 한발 앞서 간다 해서, 부모의 목에 힘이 들어갈 필요도 없거니와 남의 자식들만 못하다 해서 쫄릴 필요도 없다. 앞만 바라보며 쉬어 갈 수 있는 그늘이 되어 사랑의 눈으로 보고 싶다. 인간은 늙으나 젊으나 사랑 받기를 원한다. 수단으로 사랑을 할 것인가, 목적으로 사랑을 할 것인가? 본능과 이성이 잘 조합된 관계를 유지시키는데 초점을 맞추어 노력해 보는 것이 며느리의 남편과 좋은 관계를 유지하는 지름길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