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 강영우 선배님 !
저는 공식 석상이나 많은 분들이 모인 곳에서는 강영우 박사님으로 불렀지만 개인적 모임이나 동문회 등에서는 강영우 선배님으로 불렀고 강 선배님도 이 호칭을 좋아 하였습니다.
여러 모임과 학교 동문관계로 자주 뵈었고, 특별히 저희 방송에 가장 많이 나와 주신 분이셨습니다. 석은옥 사모님, 진석, 진영 두 아들도 WBS-TV 초대석에 소개하여 온가족이 출연자이셨지요.
돌아 가시기 3달전 쯤 그날도 서울의 명성교회 새성전 봉헌 축하 영상을 찍기 위하여 나오셨는데 조금 야위셨구나 하는 느낌이었습니다. 그러나 바로 다음 주에 말기 암 판정을 받으셨습니다.
그 상황에서 가족, 친지 및 우리들에게 보낸 감동의 편지는 앞만 보고 달려가던 저희를 잠시 멈추게 하시고 뒤를 돌아보게 하였습니다.
소천하시기 바로 얼마 전 마침 워싱턴 방문 중이던 송자전 연세대 총장님을 모시고 여러 동문들이 댁을 직접 방문 하였지요. 예배를 마친 후 그 힘든 상황에서도 “동문회 잘하고 있는데 좀 더 활성화를 시켜주기 바란다”며 격려와 당부를 마다않으셨지요. 그날도 화두는 “Never give up” 어떤 상황에서도 포기하지 말라였습니다. 저희들이 오히려 많은 위로를 받고 왔습니다.
박사님께서는 생전에 청와대. 국회, 여러 공공기관과 지역 학교, 교회 등지에서 수많은 강연, 연설로 감동을 주었습니다. 어느 날 “박사님 강연이 좀 길지 않습니까?" 말씀드렸더니 특유의 어린아이 같은 미소를 지으며 “응! 나는 뵈는 게 없는 사람이야, 말이라도 좀 더 해야겠어”하며 일깨워주셨지요.
나의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라는 말씀의 삶을 사신 당신은 “장애는 불편한 것이지 불완전함은 아니다” “장애 임에도 불구하고”가 아니라 “장애였기 때문에”라는 고백을 뛰어 넘어 승화의 차원으로 보여 주셨습니다. 장애는 하나님께서 주신 ‘위장된 축복’이 아니었나 생각해 봅니다.
마지막 유고집 ‘내 눈에는 희망만 보였다’는 제목대로 저희도 그 희망을 가슴에 품고 선배님의 유지를 기리겠습니다.
강영우 선배님! 사랑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