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음악과 생활

2013-02-22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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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론마당

▶ 이예진 / 샌프란시스코

음악을 들었을 때의 반응과 그 영향력은 무궁무진하다. 대학시절 영문학 에세이를 쓸 때 비요크(bj?rk)를 들으며 그녀의 목소리처럼 글을 짜내면서 밤을 지새웠고, 공지영 작가의 ‘도가니’를 읽을 때는 3시간 동안 루시드 폴의 ‘해바라기’만 자동 반복하여 들었다.

어떤 노래들은 누구와도 공유하지 않고 혼자 끌어안고 있고 싶고, 어떤 노래들은 마다하는 지인들에게도 억지로 들려준다. 또 어떤 노래들은 같이 듣기만 해도 친밀감이 확 오르는 느낌이다.

언제 듣느냐에 따라서도 느낌의 차이가 있다. 새벽에 공부하다가 갑자기 귀에 들어온 기타 솔로 파트는 나를 마치 열병에 걸린 사람처럼 설레게 해서 결국 3일후에 나를 일렉트릭기타를 사게 만들었다. 빗소리가 창밖으로 들리고 기분이 감상적일 때는 아예 빗방울 소리가 들어있는 노래나 가사 없는 노래를 해질녘까지 듣는다.


음악은 나를 정의할 만한 요소이다. 그래서 새로운 음악을 멀리하고 옛날에 듣던 노래들만 다시 재생하는 나를 발견했을 때 무언가 석연치 않음을 느꼈다. 음악이 내 생활에 큰 비중을 차지하는 만큼, 음악에 대한 욕심도 컸다. 더 새로운 음악을 찾기 위해 많은 시간과 노력을 투자했다. 하지만 컴퓨터에 늘어가기만 하는 한번도 제대로 듣지 못한 노래들이 여기저기서 들어달라고 아우성을 친다.

살펴보기 전에는 존재조차 까맣게 잊어버렸던 노래들도 넘쳐난다. 내가 가지고 있었다는 것조차 알지 못하고 있었던 것이다. 내가 가지고 있는 수많은 노래들 중 항상 들어왔던 노래만 오래된 버릇처럼 듣고 있었고, 새로운 노래들로 나아가지 않았다는 것을 감지한 순간, 나는 새로운 것만을 추구할 게 아니라, 내가 가지고 있는 것을 먼저 알아가면서 발전시켜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것은 비단음악뿐이 아니라 다방면으로 적용할 문제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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