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부모의 성장 고통

2013-01-25 (금) 12: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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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일룡 변호사 훼어팩스 카운티 교육위원

지난 주말 막내아이가 겨울 방학을 마치고 학교로 돌아갔다. 대학교 4학년이니 마지막 겨울 방학이었고 한 학기만 지나면 졸업이다.
언제 학교를 다 마쳐 내가 좀 홀가분해지나 했었는데 이제 몇 달 후면 대학을 졸업한다고 생각하니 어디 한 구석 허전한 감이 찾아 오는 듯하다. 잔소리 할 기회나 학비 댈 날도 얼마 남지 않았다는 생각이 드는게 왠지 섭섭하기도 하면서 말이다.
나는 아들만 둘 있다. 딸을 키워 본 적이 없어 딸의 경우는 어떤지 모르겠다. 그러나 두 아들 녀석들에게 언제서부터인가 정확히 얘기를 할 수 없지만 아버지인 나의 권위가 예전처럼 받아 들여지지 않는다는 것을 느끼기 시작했다. 적어도 고등학교 때부턴 확실히 그랬던 것 같다.
둘째 녀석의 경우에는 아마 그 전부터 아니었겠나 하는 생각마저 든다. 아니 어쩌면 둘째에 비해 상대적으로 순종적인 느낌을 주었던 큰 애도 겉으로 표현을 안해서 그랬을 뿐이지 사실 속으로는 이미 둘째와 마찬가지로 고등학교 전부터 그랬었는지도 모른다.
그래도 두 애들 모두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는 같은 집에 살면서 항상 얼굴을 대하니 싫어도 할 수 없이 내 말을 들어 주는 척이라도 했었을 것이다. 그런데 이 모든 것이 애들이 대학에 들어가면서 집을 떠나자 달라지기 시작했다.
아마 집을 떠나는 것은 애들도 무척이나 기다렸을 것이다. 부모의 간섭 없이 자유를 만끽하며 살 수 있다는 것처럼 스릴있는 것도 없을런지 모른다.
그런데 나는 애들이 대학에 들어가 그들의 평소 생활 모습과 생각을 쉽게 접할 수 없게 되고 내가 해 줄 수 있는 부분이 적어지자 나의 아버지로서의 적절한 역할이 무엇인지 혼돈이 오기 시작했다. 그냥 관망하는 것이 최선인지 그래도 가끔 무엇인가 한 마디는 던져야 되는지 확신이 서지 않을 때가 많아졌다.
큰 애가 대학교 4학년에 들어서면서 졸업 후의 진로를 놓고 씨름할 때도 사실 그 당시의 고용시장이나 대학원 진학 사정에 대해 그 애보다 훨씬 제한된 정보 밖에 갖고 있지 않는 나로서는 뚜렷하게 방향을 제시하거나 조언을 해 줄 수가 없었다.
그리고 나의 한계는 앞으로 갈수록 더욱 심해 질 것이라고 생각하니 나름대로 무력함을 절실히 느끼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아마 이는 피할 수 없는 현실로 내가 노력한다고 달라질 수 있는 일이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둘째 애는 대학원에 진학하고 싶다고 한다. 본인이 공부하고 싶은 분야와 가고 싶은 대학원을 얘기하는데 그 분야 공부에 대해 사실 아무런 정보가 없는 나로서는 그냥 들을 뿐이지 도움이 될 수 있는 말을 해 줄 수 있는 입장이 아님을 확실히 깨달았다.
또한, 내가 평소에 생각했던 학교들과 전혀 동 떨어진 학교들이 둘째의 지원 학교 리스트에 포함되어 있는 게 이제 나는 애들에게 뒤처져 있음이 분명했다. 사실 이것은 단지 나에게만 국한된 일은 아닐 것이다.
내 자신이 대학에 들어 갈 때나 대학 졸업 후의 진로를 놓고 고민했을 때 나의 부모님들도 비슷하게 느끼셨을 것이다. 그리고 가끔 부모님이 그에 대해 한 두 마디 말씀 하시려면 나 자신도 별로 달갑지 않게 받아들인 적이 있었음을 새삼 깨닫는다.
이 번에 둘째가 학교로 돌아간 시점은 사실 겨울방학을 그래도 며칠 남겨 두고 있을 때였다. 둘째를 그래도 며칠이라도 더 보고 싶은 욕심에 지금 학교로 가 보았자 기숙사 식당 문도 열지 않아 식사 해결도 쉽지 않을테니 그냥 집에서 며칠 더 푹 쉬고 가지 않겠냐고 물어 보았다.
그랬더니 둘째의 대답이 예상 밖이었다. 학교로 돌아가야 정말 쉴 수 있단다. 이제는 집보다는 자신의 학교 기숙사가 더 쉴 수 있는 곳이 되어 버린 것이다. 그 사이 학교가 진정한 “집”이 되어 버리고, 집은 이제 그냥 부모의 집에 불과한 것이다. 어쩌면 방학 때 부모 집에 오는 것이 “집”에 돌아 온다기 보다는 부모를 방문하는 것이 되어 버렸는지 모른다.
둘째의 그 대답에 어떻게 반응을 보여야 될 지 몰랐다. 그러면서 나도 과거 대학 시절 방학때 집에 돌아 왔을 때 느꼈던 것들이 새삼 떠올랐다. 아마 첫 학년이 지나면서 바로 그랬던 것 같다.
부모님 집으로 다시 돌아온다는 것은 설레고 포근한 느낌을 주었지만 그래도 내가 정작 있어야 할 곳은, 그래서 나의 “집”이 되어 버린 곳은, 학교였던 것이다. 쉬어도 학교 기숙사에서 쉬어야 제대로 쉬는 것 같았고 부모님 집에 돌아와 있을 때는 항상 무언가 해야 할 일을 뒤에 남겨둔 채 그냥 도피하고 있는 느낌이었던 것이다.
비록 나와 한 집에서 같이 살지만 대학을 졸업한지 이제 3년이 되어가는 큰 애나 이제 가을에 대학원 진학을 준비하는 둘째 모두 더 이상 내 “품 안”의 자식은 아닌 것이다.
그들을 훨훨 날아 갈 수 있도록 내버려 두어야 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이치인데 아직 내 마음이 거기까지 와있지 않다. 이게 바로 내가 아직 아버지로서 성장, 성숙하기 위해 겪는 고통인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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