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뉴타운”

2012-12-29 (토) 12: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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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창욱/ 정신과 전문의, MD

뉴타운의 참사사건에 관련된 기사가 아직도 나날이 미디어를 채우고 있으며 총기단속에 대한 이야기가 큰 폭을 차지하고 있다. 그러나 나에게는 아직도 그 참사에 대한 충격에서 벗어나지를 못하고 그저 멍한 심정일 뿐이다. 뉴타운은 내게는 그리운 고향과 같은 곳이기 때문이다.
미국에 도착하여 뉴욕에서 일 년 동안 인턴을 하면서 미국도시 생활에 실망하여 다음 단계의 의학연수를 대도시에서 떨어진 곳에서 하기로 했다. 그곳이 뉴타운이다.
연수에도 훌륭한 페어필드 병원이 있었고 예일대학에서 펠로십도 할 수 있어 그 은혜가 컸었다. 그보다도 뉴타운의 인정에 푹 빠져버렸다. 아내와 내가 뉴타운으로 옮긴 것이 참으로 잘 했다고 여겼다.
우리 부부가 병원 사택에 도착 하자마자 마을 사람들이 찾아와서 무엇을 도울까, 어떻게 하면 우리가 미국 생활에 적응하며 동화 할 수 있을까를 염려 해주었고 동리 곳곳을 소개 해주면서 시장까지도 데려다 주었다.
첫 아이가 태어났을 때는 이웃이 마치 친척인양 도와주었다. 특히 명절에 고향을 못 갈 것을 배려해서 이집 저집에서 초대를 해주었다.
첫 성탄절에는 나를 마을 합창단에 참가시켜 처음으로 크리스마스 캐럴을 불렀다. 마치 늘 할리우드의 영화를 보았든 꿈같은 생활을 몸소 즐겼다.
거기서 우리 두 아이가 출산했다. 우리를 친인척처럼 도운 빌(William)은 샌디훅 학교의 선생이었다. 몇 년 전에 뉴욕에 사는 우리 딸이 그 근처 브릿지워터에 여름 별장을 장만했다. 전혀 자기가 태어난 곳이라는 의식을 하지 않았다고 했지만 나는 속으로 웃으면서 고향을 찾는 연어의 생리를 생각 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 연유로 한 중추(仲秋)에 우리가 처음 미국에 새살림을 차렸던 집을 찾았더니 그 것이 마치 황혼의 고성(古城)마냥 폐가가 되었고 병원도 문을 닫았었다. 추억에 섞인 슬픔에 뭉클하였다.
그 느낌을 2008년 서울의대 미주회보에 발표한 적도 있다. 그러나 그 마을 사람들의 정서가 아직도 그대로 남아있다고 느꼈기에 다시 정을 부쳐볼까 하는 아이 같은 모정(慕情)도 없지 않았다.
그래서 옛날에 다니던 레스토랑에서 저녁도 먹고 기회가 나는 대로 뉴타운의 메인 스트리트를 지나기를 즐겨했다. 늘 뉴타운은 그림에나 동화에서 보는 아름다운 동리라고 여겨 왔다.
이번 참사 후에 그 동리의 아름다운 분들의 얼굴이 하나하나 안개 속에서 나타나고 안개 속으로 사라진다. 그렇게 착하고 인정이 많은 동리, 우리에게 은혜를 베푼 그들에게 왜 이런 참사가 왔을까. 한동안 이런 상념이 내 맘에서 떠나지 않을 것이다.
뉴스에서 죽은 아이들의 귀여운 사진을 볼 때마다 뭉클해지는 심정을 감당키 어렵다. 기도를 어떻게 해야 좋을지 모르겠다.
총기단속에 대한 시사에 대한 관심보다 하나님께 참사를 당한 가족과 뉴타운의 아름다운 여러분에게 따뜻한 위로를 하여 주시기를 빌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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