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는 시어머니가 연로하셔서 시할머니 같이 고된 시집살이 시키지는 않을 거야, 걱정하지 마라.” 긴장해 달달 떨면서 베일을 쓰고 결혼식장 향해 나서는 내 귀에 엄마의 속삭이던 말이다. 하지만 그 순간 그런 문제는 무슨 뜻인지 아직 모른다.
내가 시집을 오니 작은 처녀아이가 있어, 부엌에서 나를 도왔다. 그 이름이 ‘연이’라고 해서 부르기 쉽고 마음씨가 착해, 연이와 나는 곧 부엌에서 단짝 친구가 되어버렸다.
가끔 소곤소곤 재미있는 할머니 흉도 보고(나의 시어머니를 연이는 할머니라고 불렀다) 연이의 정보 제공에 의하면, 할머니는 소고기나 돼지고기는 안 잡수시고 생선도 안 좋아하시는데 겨우 한끼 잡수시면 그만이고, 우거지 국을 좋아하셔서 하루걸러 끓여야 한단다.
그런데 연이가 끓인 우거지 국은 맛이 좋고 내가 끓인 우거지 국은 싱겁다. 우거지 국도 하나 못 끓인다고 흉볼까봐 어느 날 연이의 솜씨를 살짝 옆 눈으로 보니, 우거지 나물에 된장 한숫가락, 참기름 마늘 양파 등 갖은 양념을 넣고 간이 잘 배게 손으로 쪼물락 쪼물락 힘을 주어 한참 맛있는 우거지 나물로 무친 다음 멸치와 쌀뜨물을 붓고 천천히 끓인다. 옳지, 그랬구나. 배웠다, 방법이 다르다.
누가 시키는 사람 없는데도 손으로 입을 가리고 울 일이 연발하는 시집살이, 들통이 날 때마다 ‘괜찮다, 괜찮다’ 부드러운 시어머니, 고마우신 아량.
음식이나 식사 풍습이 다르고 새로운 식구들의 얼굴은 마치 지구 저편 생소한 땅에 나 혼자 뚝 떨어진 외로운 참새 같은 나에게 시어머니의 용서의 말 한마디는 그날그날 위로가 됐으며 나를 지탱하게 해주셨다. 어느 날 시어머니께서 “내일 아침 우리 부인회에서 야외예배 간다고 하니 나도 따라 갔다올께” “어머니 잘되셨네요, 염려 말고 다녀오세요.”
이튿날 아침 일찍 시어머니는 집을 나가시고 연이와 내가 집을 지키는 데 그 동안 못 본 친정 엄마 보고 싶은 생각이 나서, “연이야, 나 잠깐 등 너머 할머니 집에 갔다올께 집 잘 지킬래?” “예, 아주머니. 갔다 오세요 집 잘 지킬께요”한다. 연이의 허락을 받자말자 한달음에 바로 등 너머 있는 친정집에 뛰어갔다. 가자 말자 내가나온 뒤 연이가 대문을 잘 잠궜는지 걱정이 되어, 다시 집으로 뛰어가니 소풍가신 시어머니께서 벌써 집에 와 계시지 않는가! 어찌나 미안하고 당황스러운지 마치 뭔가 훔치다가 들킨 것 같이… 할 말이 없어 멍하니 서있는 나에게 “오늘이 아니고 다음 토요일에 간 단다. 내가 잘못 듣고 그랬어”하신다.
그 날 저녁 나에게 시어머니께서 “내가 너를 믿고 집을 비우고 외출을 했는데, 너마저 내 뒤를 따라 미처 집을 뛰처 나가버리면 누가 집을 지키노?” 하신다. 불법외출을 했으니 입이 두개라도 할 말이 없다. 왠일인지 연이가 집지키는 것을 못 믿어 하신다.
시어머니는 내가 집을 지키는 것을 좋아하시고 나는 밖으로 나돌기 좋아한다.
그리도 착한 시어머니는 여전히 조심스럽고, 그 동안 몇 날 못 본, 우리를 무섭게 키운 친정 엄마는 눈물 나도록 보고 싶어 엄마를 향해 무작정 뛰쳐 나갔던 것이다.
내가 지금 며느리 셋을 둔 시어머니다. 시어머니가 되고 보니 며느리들이 귀엽다.
내가 시어머니 되어 버린 나를 보고 놀래면서 내리사랑을 체험하며 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