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정전 6일, 드디어 전기가

2012-11-10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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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살며 배우며

▶ 조성내 컬럼비아 의대 임상조교수

허리케인 샌디가 뉴욕, 뉴저지의 해변을 강타한 후 지난달 29일부터 정전이 되었다. 하루 이틀은 그런대로 지낼 수가 있었다. 친구들은 어떻게 지내나 하고 궁금해서 전화를 했더니 전화도 되지 않았다. 텔레비전도 볼 수가 없고 라디오도 들을 수가 없으니까 바깥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몰라 답답했다.

라디오가 일상생활에서 아주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새삼 깨달았다. 아침이면 라디오 알람이 잠을 깨워주고, 방송이 그날 하루의 소식을 전해준다. 방송 시간에 맞추어 출근을 한다. 그런데 전기가 없으니 TV는 쓸모가 없게 되고 말았다.

아내는 냉장고 안의 우유, 계란, 고기, 생선을 끄집어내서 전기가 들어와 있는 친구 집에 다 가져다 주었다. 다행히도 개스는 들어와서 밥을 해먹을 수 있었다. 주로 라면을 끓여서 먹었다.


정전 3일째 되니까 집안이 추워지기 시작했다. 물을 두 세 개의 큰 냄비에 끓어서 안방에 갖다 놓았다. 방안은 어느 정도 따뜻해졌다. 하지만, 물이 차서 샤워를 할 수가 없었다. 아침이면 냄비에 물을 끓어서 대야에 뜨거운 물을 부은 후 세수만 했다.

어렸을 때는 촛불을 켜놓고 책을 보고 공부를 했었는데, 이제 나이가 75세, 늙어서 그런 지 촛불을 세 개나 켜놓고도 책에 쓰인 글자를 읽을 수가 없다.

책도 못 읽고, TV도 못 보고, 컴퓨터도 못 켜고 … 할 수없이 일찍 침대에 들어가 누울 수밖에 없었다. 추우니까 옷을 네 겹 다섯 겹으로 입었다. 양말까지 신고 잤다.

길가의 가로등이 모두 꺼져 있으니 방안은 완전 캄캄했다. 갑갑했고 짜증이 절로 났다.

정전 4일. “아! 전기 없이는 못살겠구나!” 한탄이 저절로 나왔다. 전기가 이처럼 중요한 지 이번에 처음으로 알게 되었다. 전에는, 아내 없이는 못살 것이라고 생각했었는데, 이제는 아내는 없어도, 전기 없이는 못 살 것만 같았다.

밤이면 워크맨 라디오를 귀에 끼고서 뉴스를 들었다. 이번 허리케인 때문에 물에 휩쓸려 죽은 사람들, 물에 떠내려가 집을 잃어버린 사람들, 쓰러진 나무에 치여 죽은 사람들, 전기에 감전되어 죽은 사람들, 집에 불이 나서 올 데 갈 데가 없는 사람들, 먹을 것이 없어서 굶주리고 있는 사람들, 30층 아파트에서 살면서 엘리베이터가 작동이 되지 않아 매일 걸어서 올라가고 내려와야만 하는 사람들 …

이런 불행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내 마음은 아팠지만, 이런 사람들에 비해 그래도 나의 처지는 다행스럽구나 하고 위로를 삼았다.


정전 6일째가 되었다. 토요일이던 그날 오후에 드디어 전기가 들어왔다. 이제 살 것만 같았다. 오랜 만에 따뜻한 물로 목욕을 했다. 방안은 따뜻했다. 텔레비전을 켜놓고 뉴스를 보았다. 아내가 저녁밥을 해왔다.

“그래 맞아. 아내 없이는 못살지. 어찌 감히 아내를 전기한테 비교할 수가 있었단 말인가. 전기가 없으면 답답하고 짜증난다고 해도 그래도 전기 없이는 살 수 있겠지만, 아내 없이는 단 하루도 못 살지” 하며 다시 마음을 바꾸었다.

하여튼 이제 전기도 있고, 아내도 있다. 모든 게 기분이 좋다. 인생 다시 살맛이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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