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맹정승 고택’에서

2012-11-03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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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에바 오 사진작가

가을 단풍구경 겸 친지들과 한국 방문길에 올랐다. 여러 지방을 돌아 서울로 향하던 길에 온양에서 하룻밤을 머물게 되었다.

택시를 타고 호텔로 가던 중 남편이 갑자기 기사에게 온양의 ‘맹정승 댁’을 아느냐고 물었다. 기사는 “맹사성 고택이요?”하며 “여기서 20분만 가면 된다”고 했다. 청백리로 유명한 맹정승은 온양의 자랑이라며 인근 아산에 얼마 전 동상이 세워져 제막식이 있었다는 말도 했다.

그 길로 우리는 가던 길을 바꾸어 ‘맹사성 청백리 도로’라고 이름 붙은 길로 접어들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아름다운 돌담과 층계, 그리고 기와지붕들이 여기저기 작은 성을 이루고 있는 고택에 도착했다.


고택을 소개하는 안내판을 보니 이 집은 원래 고려시대 충신인 최영 장군이 살던 집이었다. 그 이웃에 살던 맹사성이 어린 시절 이 집 뒤뜰에 있는 대추나무에 올라 대추를 따먹다 들킨 일화가 유명하다. 주인이 호통을 치자 다른 아이들은 도망치는데 맹사성만 무릎 꿇고 앉아 빈 것이 인연이 되어, 최영 장군이 나중에 그를 손녀사위로 삼게 되었고 집도 그에게 물려주었다고 한다. 지금 ‘명사성 고택’으로 불리는 이 집은 우리나라 민가 중 제일 오래 된 건축물이다.

맹사성은 고려 우왕 12년에 문과에 장원급제한 후 대사헌, 우의정, 좌의정 등의 벼슬을 지냈음에도 부를 멀리 하고 검소한 생활을 한 어른이었다. 화려한 가마 대신 검은 소를 타고 다녔고 음악에도 조예가 깊어 피리를 불며 다녔다고 한다. 그리고는 스승의 집 앞을 지날 때는 소에서 내려 걸어서 지나가곤 했다고 전해진다.

남편이 ‘맹정승 댁’을 찾은 이유는 어린 시절 추억이 서려있는 곳이기 때문이었다. 외할머니가 맹정승 후손으로 친정 나들이를 갈 때면 외손자의 손을 잡고 가곤 했다고 한다. 당시 너무 어려서 많은 기억은 없지만 그곳에 할머니들이 많았고 맛있는 음식을 주며 같이 놀아 주던 기억, 앞마당 한가운데 있던 큰 은행나무가 생각난다고 했다.

실제로 그곳에는 거대한 은행나무 두 구루가 있었다. 몇 아름드리 되는 이 은행나무는 최영 장군이 심은 것이라니 600년이 넘었다는 말이 된다. 두 나무사이를 시멘트 같은 것으로 메워 만든 단 같은 것이 있는데, 아마도 선비들의 모임 장소로 쓰여졌으리라 생각하니 하얀 두루마기의 옛 선비들의 모습이 눈에 선하게 떠오른다.

맹사성은 청렴결백함 뿐 아니라 지극한 효성으로도 유명하다. 나이 7살 때 어머니가 돌아가시자 7일간 단식하고 3년간 죽만 먹었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서울에 돌아와 대선을 앞두고 떠들썩한 정치 이야기를 들으니 한심하기 그지없다. 학자는 학자의 길이 있고 정치가는 정치가의 길이 있다. 한 나라의 지도자가 되려면 오랜 세월 덕망을 쌓고 기품 있는 인격 갖추어야 하는데, 어느 날 갑자기 대통령 되겠다며 안면에 억지 미소를 짓고 자연스럽지 못한 자상한 제스처들을 보이니 모두가 눈가림으로만 보인다.

한국이 앞으로 더욱 부강한 나라가 되려면 맹사성 같은 옛 선조들의 기와 얼을 되새기며 겸허한 마음으로 그 삶을 본받아야 하겠다. 특히 정치하는 분들은 맹사성과 같은 청렴결백한 지도자가 될 수 있을지 스스로를 돌아보고 자신의 인격부터 갖추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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