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비드가 상상 속에서 몬로를 똑 닮은 캉디스(왼쪽)의 희롱을 받고 있다.
영특하고 재미있고 냉소적이고 유머러스하며 또 플롯이 배배 꼬인 프랑스제 필름 느와르로 코엔 형제의 ‘화고’와 데이빗 린치의 ‘트윈 픽스’와 함께 미국제 범죄수사물의 분위기가 물씬 나는 영화다.
마릴린 몬로를 그대로 닮은 죽은 여자가 주인공으로 나와 무덤에서 자기 얘기를 하는 식으로 진행되는데 계속해 눈이 내리는 백설이 만건곤한 알프스 지역 프랑스의 작은 마을에서 사건이 일어나 ‘백색의 필름 느와르’라고 불러도 되겠다.
영화가 시치미를 뚝 떼고 진지하면서도 어둡고 다소 변태적이요 또 희롱 끼가 있어 보면서 어디다가 비위를 맞춰야 할지를 모르겠다.
프랑스에서 가장 추운 스위스 접경지대의 인구 961명의 무드라는 마을에 인기 범죄소설 작가 다비드 루소(장-폴 루브)가 친척의 유언장 내용을 듣기 위해 이 마을에 도착하나 자기는 박제 개 하나만 물려받는다. 다비드는 친척 집을 나오자마자 개를 쓰레기통에 처넣는다.
이어 눈밭 속에서 자살한 마릴린 몬로를 닮은 섹시한 TV 일기예보자이자 치즈광고 모델인 캉디스(소피 캉통)의 사체가 발견된다. 동네 경찰서장은 캉디스의 죽음을 자살로 처리해 버리지만 다비드는 그 죽음이 자살 같지가 않다고 확신, 혼자 수사에 나선다. 서장은 이런 다비드를 보고 제임스 엘로이(범죄소설 ‘LA 칸피덴셜’의 작가)라고 부르면서 여기는 미국이 아니라고 콧방귀를 뀐다.
영화는 장르와 마릴린 몬로 그리고 팝송 등 여러 가지로 미국식 범죄영화를 닮았는데 내리는 눈 속을 달리는 다비드의 차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캘리포니아 드리민’을 들으면서 마치 할리웃의 필름 느와르를 눈 덮인 프랑스로 옮겨다 놓은 듯한 착각에 빠지게 된다.
다비드가 캉디스의 죽음의 원인을 캐 내가면서 플래시백과 캉디스의 일기를 통해 이 여자의 스캔들에 얼룩진 과거가 재구성되고 다비드는 이 얘기를 자기 다음 소설 ‘노 맨즈 랜드’의 소재로 삼는다.
캉디스는 자신을 몬로의 화신이라고 믿는 여자로 그녀의 삶과 몬로의 삶이 궤적을 같이 하는데 몬로의 유명한 달력용 나체사진의 포즈와 몬로가 케네디를 위해 부른 ‘해피 버스데이 미스터 프레지던트’까지 그대로 재현된다. 그리고 캉디스의 남자 경력도 몬로의 그것을 그대로 답습했다.
한편 다비드는 수사를 하면서 생명의 위협까지 받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죽은 캉디스에게 에로틱한 집념마저 느끼면서 집요하게 그녀의 죽음의 진짜 원인을 파고든다. 그를 도와주는 유일한 사람이 역시 캉디스의 죽음의 원인을 의심하는 서장의 젊은 부하(기욤 구이).
평범하게 생긴 루브의 무표정할 정도로 심각한 연기와 금발의 유혹적인 캉통의 자극적인 연기가 좋은 대조를 이루고 백설 속의 촬영도 아주 좋다. 또 사용된 팝송들도 영화 분위기에 잘 어울린다. 너무 똑똑해서 탈인 영화라고도 하겠지만 흥미진진한 영화다. 성인용. 제럴드 위스타쉬-마티외 각본 감독.
8~14일. 뉴아트(310-281-82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