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여성의 창] 전신영 ㅣ 글쓰는 속도와 깊이

2012-04-03 (화) 12: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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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솜씨가 좋은 내 친구 중 하나는 어느 기관의 블로그에 매주 짧은 글을 한 두개씩 올리는 일을 하고 있다. 이런 블로그 글은 증거자료 수집이나 정확도, 신뢰도에 얽매이기보다도, 최근의 혹은 보편적 이슈에 착안하여 짧고 흥미롭게 써 내려가는 데 그 묘미가 있다. 더 많은 사람들이 읽을 만하면 더 좋다. 형식도 자유롭고 소재도 비교적 무궁무진하며, 등재와 삭제가 쉽다.

나는 논문 쓰는 일을 하다보니 근거자료를 찾고 보완하고 설명하는 데 시간을 많이 쏟는다. 주장하고 결론하는 바가 탄탄한 증거와 논의로 뒷받침되는지를 늘 살펴야 한다. 논문은 글의 종류 중에서도 정확도와 신뢰도가 중요시되기 때문이다. 많은 사람들이 흥미롭게 읽을 만한 소재도 아니고 문장이 수려할 필요는 없지만, 형식도 제한적이며 주로 관련분야 전문가들을 대상 독자로 한다. 따라서 등재와 삭제가 까다롭다.

학술지 논문은 일년에 한두 편 쓰기도 어렵고, 박사논문을 쓴다는 것은 더군다나 몇 년이 걸리는 고된 여정이다. 박사과정생들의 생활을 코믹하게 패러디한 어느 잡지에는 ‘자료 수집하는 데 3년, 자료 분석하는 데 2년, 자료를 근거로 논의하는 글을 쓰는 데 1.5년, 자료 발표하는 슬라이드 한장’이라며 풍자적으로 묘사하기도 했다.

이러다보니 매주 한두 개씩 맛나게 쓰여진 글을 블로그에 올리고 많은 사람들의 토론을 멋지게 이끌어내는 친구가 부럽지 않을 수 없다. 논문을 쓰는 일이 블로그에 글을 올리는 일처럼 짧고 기발하고 재미있었으면 하고 말이다. 하지만 하나의 논문을 쓴다는 것은 매우 뿌듯한 일임에 틀림없다. 사람들이 관심없는, 그러나 중요한 일에 주의를 상기시킨다. 엄격한 검증 하에 새로운 지식을 창출해낸다.

이렇게 힘들고 고된 박사과정을 충실히 하고 있는 사람들이 있는 반면, 다른 사람들을 고용해서 논문을 쓴다거나 다른 사람들의 글을 표절하는 사람들도 있다. 힘든 과정을 생략하고 열매만 따 먹겠다는 사람들을 볼 때면 기분도 나쁘고 힘도 빠진다.

글을 쓴다는 것, 특히 한 주제에 대해서 철저히, 깊이 있게 파고 든다는 것은 대단한 집중력과 에너지를 요구한다. 하지만 언제 이렇게 한 주제에 대해서 깊이 생각해 볼 날이 또 올까? 그러니 아직 남은 기간동안 이 과정을 보다 즐기면서 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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