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여성의창] 이미애 ㅣ 남몰래 흘리는 눈물

2012-03-30 (금) 12: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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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보, 여기 빨리 와서 이것 좀 봐.” 조금은 상기된 남편의 목소리가 나를 잡아 당긴다.

TV 화면에서는 이탈리아 작곡가 도니제티의 희극 오페라 ‘사랑의 묘약’ 중 그 유명한 ‘남몰래 흘리는 눈물’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주인공 네모리노가 마을 아가씨 아디나에게서 진정한 사랑의 모습을 발견하고 부르는 서정적이며 구슬픈 곡조이다. 남편이 나를 부른 것은 그 아리아를 부르는, 요즘 떠오르는 테너 롤란도 비아존의 목소리와 그 눈빛을 보여주기 위함이었다.

짝사랑하던 여인으로 부터 자신을 진정으로 사랑하는 모습을 발견한 그 벅찬 감격을 소박하고도 순수한 그리고 수줍기까지 한 눈빛을 담아, 갓 씻은 아기의 살결만큼이나 향기롭고 부드러운 목소리로 표현하고 있었다. 예전의 그 어느 테너에게서도 찾아 볼 수 없는 순수함이, 순박함이 목소리와 함게 묻어나온다. 그 아리아가 끝나자 객석에서 앵콜을 요청했다. 오페라 공연 도중에는 보기 드문 앵콜이란다. 마음좋게 생긴 비아존은 다시 한번 ‘남몰래 흘리는 눈물’을 절절한 사랑의 마음을 담아 아름답게, 애달프게 쏟아낸다. “ Una furtive lagrima (남몰래 흐르는 눈물이) negli occhi suoi spunto… (그녀의 두 눈에서 흘렀소…) ……”


한 사람을 사랑한다는 것은 그 사람의 모든 것을 껴안고 가는 것이리라. 모든 것을 껴안는다는 것이 그렇게 가슴 아픈 일인 줄 모르고 시작한 사랑. 사랑의 기쁨 때문에 흘리는 눈물은 잠시, 가슴에 품은 그 사람으로 인하여 안타깝고 아팠던 시간들. 갈 바를 알지 못하고 황망하게 서 있었던 때는 또 얼마나 많았던가. 그 구비구비에 남몰래 흘렸던 눈물이 젖어들었다. 그래서 네모리노가 쏟아내는 사랑의 언어의 선율이 그렇게 구슬픈가 보다.

지난 30여년의 함께 걸어온 시간 속에서 남몰래 흘렸던 눈물이 지금의 나를 만들고 오늘의 우리를 만들었다. 내가 숨죽여 눈물을 흘리고 있을 때마다 항상 내 곁에서 나보다 더 가슴 아프게 나를 위해 눈물 흘리시는 그분을 만났고, 그분의 그 사랑이, 남몰래 눈물을 흘릴 수 밖에 없었던 그 상황들은 나의 모습을 더 아름답게 만들어가는 과정인 것을 알게 하셨다.

지금도 나는 아버지 앞에 앉아서 남몰래 많은 눈물을 흘린다. 내 가슴속에 담겨 있는 많은 사람들의 삶의 고단한 모습들을 아버지 앞에서 풀어놓을 때 안타까워서, 마음이 너무 아파서, 그리고 이 자리에 있게 하신 사랑에 감사해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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