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여성의 창] 김정옥 ㅣ 봄날에는

2012-03-14 (수) 12: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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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깻죽지 위에 봄볕이 따끔거리며 곰실대는 봄이 오면 천지 사방에 꽃들이 핀다. 그리운 사람, 보고 싶은 얼굴, 그리고 지울 수 없는 이야기들이 온통 나무를 뒤덮는 꽃으로 허드러지게 피어난 것 같다. 저마다의 사연들이 갖가지의 고운 색과 향기로 온 천지를 채운다.

그래서 봄은 서럽지도 않은데 눈물이 나는가 보다. 무너지듯 꽃들이 지고 봄날이 다 가기 전에 그리운 사람들을 마음껏 그리워 하자. 그리움이 지나간 자리에는 달콤한 새힘이 고일 테니까.

그리움으로 생각이 나는 사람은 꽃이 진 자리에 열매로 맺힌다는 생각이 든다. 흡족한 사랑을 했건 미진한 사랑을 했건 사랑이라는 꼭지에 달려 있으니까. 내 가슴속에 촉촉히 살아있는 사람. 내가 그리워 하는 사람, 나를 그리워 했던 사람, 나의 어머니. 삶이 혼자인 것처럼 외로움이 찾아오는 순간이 되면 조용히 찾아와 내 약한 마음을 어루만져 주신다. 떠난 것이 아니라고, 힘내라고 주름지고 다 닳은 손으로 나를 안아 주신다. 꽃이 좋아 봄날에 떠나 가신 나의 어머니가 이 봄에도 꽃처럼 웃어 주신다.


생전의 어머니와 멀리 떨어져 살기도 했지만 가끔 전화를 해도 어머니의 관심사를 여쭙고 길게 들어 드린 적이 별로 없었다. 생각해 보니 전화도 어머니가 걸어 주신 적이 더 많았다. 멀리 있는 자식이 그립고 하고 싶은 이야기가 많으셨을 텐데도 바쁘다는 딸을 붙잡지 못해 늘 “알았다”로 짧게 끊고 마셨던 것이다. 이제 내가 어머니가 되어 같은 입장이 되었다. “바쁠텐데 전화 줘서 고맙다”라는 말로 아이들의 전화를 바삐 끊어 주고는 느닷없이 아쉬워질 때가 있다. 어머니가 느끼셨을 그 서운함을 나도 느끼는 것이다.

애초에 탯줄로 하나였던 몸, 어미와 자식. 나면서 끊었다고 믿었던 그 끈을 어머니들은 놓지 못하고 가슴으로 잡고 있었던가 보다. 그래서 떠난 자식임을 알게 될 때마다 한 웅큼씩 아픔을 내려 놓느라 보채고 있는 것이다. 아픔이 영글어 씨앗으로 간직되었고 그리움을 달래어 꽃으로 피워 냈는가 보다. 그래서 봄날에는 어김없이 꽃잔치다. 그리운 사람을 맘 껏 그리워 하고 더 깊이 사랑하라는 모든 어머니들의 향기로운 속삭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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