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여성의 창] 이미애 ㅣ 큰 딸의 성장통

2012-02-17 (금) 12: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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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무실 앞의 주차장은 배꽃이 눈처럼 흩날리고 있는데 버클리에 있는 큰 딸은 감기 몸살로 끙끙 앓고 있다. “좀 어떠니, 엄마가 내일 저녁에 갈까?” “아니, 괜찮아” 하면서도 집 떠나 처음으로 아픈 시간, 가족을 향한 그리움을 애써 참는 눈물소리.

LA에서 태어난 큰 딸은 이곳 산호세로 이사오기 전까지 2년 반의 시간이 가장 행복한 시간이었을 것이다. 클래식 음악듣기가 취미인 아빠 덕분에 일찍부터 세미하고, 잔잔하며 때로는 폭풍우 같은 클래식의 세계로 안내되어져서 2살도 되기 전부터 유명한 3테너인 파바로티, 도밍고, 까레라스의 음색의 차이를, 바이올린과 첼로의 선율의 차이를 알아내며 아빠를 즐겁게 하였다.

“엄마 나는 빠아저씨가 좋아”라며 특히 파바로티의 목소리를 좋아하던 그 아이가 산호세로 이사한 후 3살이 되면서 갑자기 맞았던 진통들... 항상 함께하던 엄마를 일터와 새로 태어난 동생에게 빼앗기고, 옆집 오빠의 장난스런 놀림에 놀라서 달아나다 집을 잃어 버렸던 몇 십분간의 공포에다 주일마다 교회에서 만나는 2명의 오빠들의 끊임없는 지독한 장난끼 때문에 늘 울면서 쫓아 다니던 일까지…. 눈물을 모르던 아이가 눈물이 많아졌다. ‘인생을 살다보면 원하지 않았던 힘든 일들이 이렇게 불쑥 찾아온단다. 처음 맞는 이 아픔 혼자 이겨내 보렴. 너의 방법대로…..’


큰아이는 12학년이 된 2010년 9월에도 여름방학부터 시작한 일을 놓지 못하고 있었다. 입학원서 ,학교의 AP과목들, 온전히 공부에만 전념해도 모자라는 시기에 일주일에 15시간이 넘게 일터에서 보냈다. 2009년 7월부터 시작된 우리 가정의 어려운 사정 때문에 흔한 SAT학원 한번 다녀보지 못했고, summer science camp참가는 꿈도 꾸지 못했던 그 아이에게는 그래서 12학년의 5개월이 특히 더 힘든 시간이었을 것이다.

‘가장 많이 지원해 주어야 할 시기에 아무것도 해주지 못해서 너무나 미안하구나. 그러나 언제나처럼 엄마는 너를 믿는단다.’ 전화기 너머로 들려오는 그 아이의 숨죽인 눈물소리가 아직도 귓가에 쩔렁인다.

(실리콘밸리 한국학교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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