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의 창] 김정옥 ㅣ 도우미
2012-02-15 (수) 12:00:00
생각지도 않았는데 1월부터 ‘늘푸른대학’에서 도우미를 하게 되었다. ‘늘푸른대학’은 칠, 팔순을 넘기신 우리 교회 어르신들의 수요 모임이다. 아주 오랫동안 이어져 온 모임인데 새 목사님이 부임하시면서 새롭게 정비되어 힘차게 진행되고 있다. 교회로부터 선임받은 운영위원들이 프로그램을 짜고 여러 모양의 도우미들이 있다. 아침 10시에 모여 예배로 시작하여 간단한 컴퓨터 사용을 배우고 역사와 생활영어 회화, 합창, 체조, 글짓기, 공작 그리고 서예 등등으로 한나절을 보람되게 보내신다.
비록 넘치던 힘은 줄어 들었고 바람을 가르던 발걸음은 느려졌지만 풋풋한 마음만은 여전하신 것 같다. 머리도 깔끔하게 단장을 하셨고 색깔까지 곱게 맞추어 입으신 조끼만 보아도 나는 눈치채겠다. 잘 안되는 발음이지만 영어회화에 열심인 얼굴에는 웃음기가 배고 지휘자를 따라 ‘봄처녀’를 부르시는 눈빛은 벌써 라일락 밑에서 시를 쓰던 열일곱살 봄볕 아래로 가 계신 듯했다. 친구들을 만나 함께 먹고 이야기를 나누시는 것만으로도 좋으실 텐데 속앓이하듯 꿈틀대던 추억들을 하나 둘 꺼집어 내니 그 기쁨을 들키지 않을 재주가 없으신 모양이다. 구부정해진 등 아래로 미소가 쌓여 간다.
도우미로서 하는 일은 아주 사소한 것들이다. 악보를 큰 글자로 인쇄해서 바인드에 끼워 드리고 식사도 합창도 같이 하는 것이다. 옆에서 지켜보아 드리고 한번씩 손을 잡아 드리거나 안아 드린다. 늘푸른대학이 즐겁게 외로움을 이겨내는 모임으로 이어지기를 기도하는 일이다. 서로 몸을 붙여 극한을 이겨내는 펭귄처럼 다함께 서로를 지탱하며 버텨낼 수 있도록 다독거리는 일이다.
언젠가부터 생각했었다. 생의 마지막을 나누고 떠나자고. 허지만 마땅치가 않았다. 능숙치 못한 영어로 하던 자원봉사는 오래 가질 못했고, 가족과 내 처지에 넘치는 것은 꾸준할 수가 없었다. 아주 가까이에서 쉽게 찾은 이 작은 일이 좋다. 아마도 남이 아닌 바로 나 자신을 돕는 일의 시작임을 알아서 일까. 머지않아 그 자리에 앉아 있을 내 모습처럼 어르신들이 친근하게 느껴진다.
(자영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