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여성의 창] 전신영 ㅣ 내가 국제개발학을 하는 이유

2012-02-14 (화) 12: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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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냐에 살고 있는 9살의 소년, 초등학교 다닐 나이에 학교에는 가지 않고 들판을 뛰어다니고 있다. 새 쫓는 놀이를 하면서 간접적으로 농사일을 돕는 것이다. 스웨덴에 살고 있는 50대의 남성, 이케아에서 일하면서 네 명의 식구들을 먹여살리면서도 국가에 엄청난 세금을 내고 있다. 이 세금의 일부는 개발도상국의 원조 자금으로 쓰이고 있다. 이렇게 케냐의 한 어린아이, 스웨덴의 한 가장은 물론 샌프란시스코에 살고 있는 한국 사람들에 이르기까지 모두가 직간접으로 관여되어 있는 학문이 바로 국제개발학이다. 국제개발학은 한때 강대국 정치경제 지도자들의 전유물이었지만, 이제는 전세계 시민 모두의 학문이자 현장, 관심사가 되었다.

국제개발학은 어느 가난한 시골 노점상 주인도 주류 경제학 이론의 허점을 비판할 수 있는 열린 학문이다. 경제개발과정의 노동 이동을 설명해서 노벨경제학상을 탄 아서 루이스나 경제성장단계 이론을 주창한 월트 로스토 등과 같은 유명한 개발경제학자만이 아닌 우리의 열린 마음과 열린 눈으로 시작할 수 있다.

국제개발학은 정의하는 순간 변화하는 역동적인 학문이다. 국제개발학이 여러 학문 분야를 바탕으로 한 탄탄한 이론들을 이야기할지라도, 그 이론은 역사 속에 그리고 동시대에 살아 숨쉬고 있거나 과거의 오류를 비판하면서 계속 진화해 나가고 있기 때문이다.

국제개발에 뜻을 둔 사람들 중에는 세상을 바꾸어 보겠다는 영웅심리로 무작정 개발도상국가로 떠나려는 이상주의자들이 있다. 그들은 타지에서 가난하고 배고프고 병든 사람들을 친구처럼 대할 줄 아는 멋진 사람들이다. 반면 도움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을 학문과 분석의 도구로 여기고 ‘정규분포’에서 벗어나는 사람들을 취급하지 않은 채 국제개발학의 이론을 정립하려는 사람들도 있다. 하지만 이들은 비상한 머리를 가지고 아주 빠른 속도로 세상에서 벌어지는 일을 단숨에 간파해내기도 한다.

국제개발에 대한 따뜻한 마음과 차가운 머리가 조화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실제로 그렇게 조화를 이루어 낸 이론들이, 그런 조화를 만들어낸 사람들이 국제개발학을 이끌어 왔다. 때로는 마음만 가득한 바보로 보일지라도, 때로는 심장없는 차가운 과학자로 보일지라도 국제개발이라는 이상을 향해 필요한 기술을 연마하면서 달려가고 있는 사람들이 점점 많아지고 있다. 누구나 자신이 일생을 바쳐도 좋을 만한 분야가 있겠지만, 나에게는 국제개발학이 바로 일생을 다 바쳐도 모자랄 만큼 도전을 불러일으키고 밤잠을 설치게 하는 학문이다.

(스탠포드대 방문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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