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의 창] 이미애 ㅣ 잃어버린 길 찾기
2012-02-10 (금) 12:00:00
’여기가 어디쯤일까? 우리집으로 가려면 어디로 가야 하지? 이 길은 아닌 것 같은데…’ 서울에 올라온 지 며칠 되지 않아 엄마의 심부름으로 동생과 함께 고모님댁에 다녀오다 길을 잃었다. 가도 가도 우리집 언저리의 낯익은 풍경은 보이지 않고 낯설고 물설은 모양만 내 앞에 나타난다. 이제 내게는 옛이야기 지즐대는 정겹고 아늑한 고향에서의 시간들은 기억 속에서의 풍경일 뿐, 겨울의 매서운 칼바람 같은 서울에서의 견디어 내는 적응의 시간만이 필요하다.
6살의 촌 여자아이에게 서울살이의 시작은 그렇게 암울하게 시작되었다. 곁에 있었던 동생이 의지가 되어 집을 찾아올 수는 있었지만….
1990 년 8월 초, 어두움이 내려앉은 시간 USC대학 교정에서 미국에 도착한 지 1주일도 되지 않은 어리버리한 나는USC학교 앞에 있는 버거킹을 찾기 위해 벌써 1시간 가량이나 헤매고 있다. 오리엔테이션이 끝나고 남편과 만나기로 한 그 장소를 찾지 못하여 쩔쩔매는 모습은 영락없는 그때의 6살 촌스런 여자아이의 모습이다. 한국의 대학교처럼 정문이 따로 없으니 동서남북을 가늠하기가 힘들다. 버거킹으로 가는 길은 어디에 있는지….인적은 끊겨가고 내 머리속은 오리엔테이션 때 여학생들에게 나누어준 호신용 호루라기만 생각이 났다. 마침내 길은 찾았지만 미래에 대한 불안함이란…
2008년에 시작된 경제한파가 우리 가정을 2009년부터 얼어붙게 했다. 이 얼음은 순간 이제껏 내가 걸어왔던 길을 잃어버리게 하였다. 이전에는 길을 잃었을 때 다시 제자리로 찾아오기까지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지만 지금의 헤매임은 언제 끝날지 모르는, 매 시간의 견딤이 지옥훈련 속에 있는 것만 같다. 과연 이 훈련을 잘 견디어 낼지…. 그러나 이 훈련을 통해서 이전에는 보이지 않던 소중한 것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남편의 존재의 의미, 두 아이들의 의미, 또 나의 모든 것을 잘 아시는 그 분의 보호하시는 손길이. 그래 괴로워도 슬퍼도 캔디처럼 활짝 웃어 보자. 길을 찾을 때까지.
(실리콘밸리한국학교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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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애씨는 한국에서 대학원을 졸업하고 LA에 있는 USC에서 수학공부를 계속하려던 중 결혼생활로 공부를 마치지 못했다. 두 딸의 엄마이고, 실리콘밸리한국학교의 교사로서 아이들 내면에 있는 장점들을 살려주고 싶어한다. 한국인으로서 미국에서 살아가는 것의 의미, 문화충돌의 극복에 대해 많은 관심을 두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