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여성의 창] 천경주 ㅣ 로컬의 여왕

2012-01-13 (금) 12: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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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에게는 “로컬의 여왕”이라는 부끄러운 별명이 있다. 이는 고속도로 운전하기가 두려워 회피하는 나에게 남편이 붙여 준 조롱 가득찬 타이틀이다. 목적지까지 고속도로를 피해 도시 간의 대로나 작은 골목길까지 환하게 꿰고 있는 나에게 감탄 아닌 감탄을 하며 붙여 준 별명이다.

고속도로 운전이 너무 무서워 도로 연수를 받고 나서도 몇 년간은 고속도로를 달려본 적이 없었다. 운전을 즐기는 분이라면 이러한 두려움을 절대 이해할 수가 없을 것이다. 사람마다 남들은 이해하지 못할 사소한 것에 대한 두려움이 있다고 한다. 내게는 그것이 바로 운전이다. 특히 고속도로상의 굉음과 속도감은 놀이공원의 기구조차 무서워하는 내게 공포의 종합선물세트 같은 것이었다. 지금까지 수많은 시도가 있었지만 번번이 고속도로 입구에서 돌아서고 말았다.

하지만 국도를 이용하는 것이 것이 너무 불편해 큰 맘 먹고 고속도로를 달려야 할 때라고 결심을해야만 할 일이 생겼다. ‘정말이지 이번 만큼은 겁먹고 물러서는 일이 없어야 한다. 이번에도 포기하면 나는 정말 못난 엄마가 되는 것이다.’ 그 두려움을 극복하기 위해 세운 나의 전략은 소위 말하는 시뮬레이션이었다. 우선 목적지까지 거치게 될 모든 길과 인터체인지 그리고 어디에서 차선을 바꿔야 할 것인가 지도를 보며 연구(!)를 했고 충분히 숙지가 되어서야 운전대를 잡았다. 아, 그때의 두근거리던 심정이 지금도 생생하다.


어라? 막상 하이웨이에 들어가니 생각보다 무섭지 않다. 사전에 기억해 놓았던 길이 이전에 와 본적이 있는 듯 느껴지고, 그토록 쌩쌩 달리던 차들이 마치 흐르는 물결처럼 내 주위를 지난다. 지금껏 가졌던 두려움이 묘한 스릴로 바뀌어서 어느덧 즐거운 비명을 지르고 있다.

두려움은 막상 마주치면 상상과는 다르다. 정작 그러한 대상은 존재하지 않는데 끊임 없는 상상으로 무시무시한 뭔가가 있다고 믿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허상을 무너뜨릴 수 있는 길은 냉철하고 차분한 준비인 것 같다. 혹시 일어날 지도 모를 일을 예측하고 그에 대해 충분히 준비하니 두려움이 극복된다는 것을 운전을 통해서 배웠다. 인생은 끊임없는 연습의 연속이라고 누군가 말하지 않던가. 이젠 고속도로 입구 사인을 보면 반갑다.

(상항한국학교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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