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여성의 창] 류 미 ㅣ 엄마의 꿈

2012-01-11 (수) 12: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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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엄마는 어릴적 한국전쟁 중 외할아버지를 잃으시고 홀어머니 밑에서 오빠, 여동생과 함께 자라셨다. 생활력이 대단하셨던 외할머니 덕에 그래도 나름 여유로운 생활을 하셨다지만 그래도 모두 다 너무 가난하던 시절 풍족함이란 건 아마 딴세상 일이였을 것이다.

그런 시절 우리 엄마를 꿈꾸게 했던 것은 밥먹고 사는 것과는 아무 상관이 없어 보였던 음악이였다. 엄마는 어릴 적부터 노래를 굉장히 잘하셨고 나름 성악가가 되고 싶은 꿈을 키우셨단다. 하지만 외할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집안의 대소사를 대신 결정하셨던 작은 외할아버지는 엄마의 꿈을 단번에 잘라버리셨다. 집안에 ‘딴따라’를 키울 수 없다는 것이 이유였다.

지금 생각하면 엄청나게 시대착오적이지만 그 당시엔 그게 또 서로 이해되는 상황이였나 보다. 하지만 이에 굴하지 않고 엄마는 돈을 모아 악보집을 사셨다. 가격이 만만치 않았던 책을 사기 위해 엄마는 외할머니 몰래 1년 가까이 돈을 모으셨다고 했다.


동네 교회에 있던 풍금을 치면서 독학으로 노래를 부르던 첫날! 연습을 하다가 잠깐 화장실에 갔다 오셨다. 그런데 그 사이 책이 없어진 것이다. 악보집을 찾아 여기 저기를 헤맸지만 책은 어느 곳에도 없었다. 너무나 실망하고 집으로 돌아오면서 엄마는 하염 없이눈물을 흘리셨다.

’왜 하필 연습 첫날에 이런 일이 일어난 것일까?’ ‘이것이 내 운명인 것일까?’란 질문을 수 없이 하면서 엄마는 결국 악보집을 다시는 사지 못하셨다. 집안 어른들의 반대와 운명의 장난처럼 연습 첫날 책을 잃어버린 사실에 엄마는 음악으로 대학을 가겠다는 꿈을 더 이상 꿀 수 없었다고 했다.

우리 엄마가 성악가가 됐다면 아마 난 우리 엄마와 아빠의 딸로 태어나지 않았을 수도 있다. 엄마의 인생은 완전히 다른 각도로 나아갔을 테니까. 그래서 어릴 적 그 얘기를 들을 때마다 엄마가 성악가가 되지 않은 것이 참 다행이라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이제 나이가 들어 엄마를 내 엄마만이 아닌 한 인간으로 보게 되면서 그 때 엄마가 실망을 딛고 다시 한번 돈을 모아 책을 사서 노래 연습을 했다면 어땠을까 생각해 본다.

아주 유명한 성악가는 아니더라도 최소한 꿈꿨던 일을 했던 행복한 할머니가 돼 있지 않았을까? 엄마에 대한 그리움에 부질없지만 기분 좋은 상상을 해본다.

(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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