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여성의 창] 천경주 ㅣ 정월의 색

2012-01-06 (금) 12: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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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사람에게 새해를 상징하는 색깔이 있다면 그것은 아마 하양일 것이다. 새해 첫날에는 시루에 찐 하얀 떡을 길게 늘여 뽑은 가래떡을 동글 납작하게 썰어 끓인 떡국을 누구나 한 그릇씩 먹기 때문이다. 새해 첫날 아침 떡국을 먹는 이유는 흰색이 새롭게 시작함을 의미하는 색깔이기 때문이라고 한다.

흰색은 자연 그대로의 색이며 그만큼 순수하고 진실한 것을 상징한다. 결혼식의 신부가 하얀 웨딩드레스를 입는 이유는 흰색이 주는 순결함 때문이고, 또한 병원의 간호사가 하얀 유니폼을 입는 이유도 청결한 이미지 때문이다. 하양은 다른 한편으로 빛을 의미하며 신선한 출발을 의미한다. 새해 첫날 첫 번째 음식으로 하얀 떡을 넣어 끓인 국을 먹는 풍습에서 새로운 한 해가 희망차게 시작되기를 원했던 조상들의 경건한 마음을 엿볼 수 있다.

이러한 우리 민족의 풍습은 서양의 그것과 많은 차이를 보인다. 그네들은 새해 첫날에 의미를 두기보다는 다사다난했던 한 해의 마지막 날을 기념하는데 더 많은 의미를 두는 것 같다. 이들은 한 해의 마지막 밤에 모여 밤새도록 파티를 즐긴다. 이렇듯 한 해를 시끌벅적하게 떠나 보내며 새해의 첫 번째 하루를 맞이한다. 그래서 정작 새해 아침에는 별다른 모임이 없다. 반면에 우리네는 어떤가. 새해의 아침 해가 뜨면 비로소 온 가족들이 한 자리에 모여 어른들의 덕담을 듣고 새로운 해에는 소망이 성취되며 탈없이 지내기를 기원한다.

서양 사람들이 다 함께 모여 즐겁다 못해 요란하게 한 해를 보내고 새해를 맞는데 반해 우리 민족은 흰색의 떡국과 함께 한 해 동안 삼가 조심해야 할 일들을 떠올리며 자신의 마음가짐을 새롭게 한다. 흰 바탕에 때가 묻으면 금방 눈에 띄므로 조심해야 하듯 새해를 맞는 사람들은 자신의 희망과 바람에 때가 묻지 않도록 애쓴다. 새하얀 드레스에 묻은 얼룩을 보는 순간 한껏 부풀었던 마음이 스르륵 가라앉듯 희망차고 신선한 새해의 출발이 자칫 사소한 실수로 엉망이 되서는 안되니 조심하고 또 조심하는 것이다. 이렇게 조심하는 경건한 마음에도 하얀색의 뜻이 숨겨져 있다.


새해가 밝았다. 삼가 조심하는 하얀 마음으로 하얀 도화지와 같은 2012년 내 인생에 어떤 그림을 그릴지 궁리해 봐야겠다. 내게도 정월은 하얀색일 것이다.

(상항한국학교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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