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 새아침의 햇살이, 내 침실의 커튼 틈새를 휘젓고 들어와 나를 깨운다. 나는 커튼을 활짝 열어젖히고 내 집 앞 은행나무 거리의 아름드리 은행나무들을 바라본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샛노란 은행잎으로 화사하게 온 몸을 휘감았던 노랑 옷을 훨훨 벗어, 아스팔트 바닥에 떨쳐 버리고 이제는 홀랑 벗은 나목(裸木)이 되어, 차가운 겨울바람에 오돌 오돌 떨고 서 있다. 그래서 세월의 흐름과 계절의 바뀜을 다시 한 번 실감케 한다.
내가 이 땅에 이민 와 2012년 새해 아침에 대하는 풍경에 겹쳐, 두고 온 그 땅, 동해 바닷가의 해돋이를 맞는 풍경이 겹쳐 흐른다. 흰 띠 같이 깔린 구름 사이로, 활활 타오르는 용광로(熔光爐)에서 흘러나오는 쇠붙이같이, 벌겋게 탄 새벽 해를 바라보는 많은 군중들의 모습들! 그들의 표정과 몸짓에서 새로운 것에 대한 도전(挑戰)의 모습과 희망의 눈빛이 환하게 비침을 본다.
내가 뒤뚱 뒤뚱 걸어 온 80여년의 세월. 그 세월 중에서도 일제강점기(日帝强占期) 만큼이나 긴, 36년 간의 이민의 세월! 그리고 그 세월 동안 내가 저지른 여러 가지 일들이 보람 있는 추억 거리로 머리에 떠오른다. 그 추억거리 중에서도 이민 세월의 절반 이상인 25년이란 장기간에 걸쳐, 이 ‘오피니언’ 란에 고정으로 집필한 ‘수필산책’ 칼럼을 빼 놓을 수가 없을 것 같다.
이 기간 동안에 써 온 그 많은 글로 엮어 낸 수필집 4권 그리고 자서전 1권!, 그 글 가운데, 나이에 걸맞지 않게, 어린아이 옹알이 같은 글을 써 놓고는 동심(童心)적인 표현이라고 포장 했다고 비양 거릴 독자가 있었다고 가정(假定) 한다면, 나는 이렇게 대답하고 싶다. 지난 날 내가 생활수단으로써 안정된 분야를 버리고, 또 그 발표의 가능성이 넓은 성인 극작가의 길을 걷기를 마다하고, 아동극 분야란 좁은 길을 택한 내 가슴 속 개천에는 언제나 동심이란 물줄기가 흐르고 있다고 말이다.
돌이켜 보건데, 내가 이 수필산책을 쓰기 시작한 1980년대 후반에서 2000년대 초반까지는, 다른 필자들의 경우에도 마찬가지겠지만, 내 글에 대한 독자들의 반응, 특히 잘 된 글에 대한 반응이 즉각적으로 그리고 수 없이 전달되어 왔었기에, 글 쓰는 보람 같은 흐뭇함을 느끼며 글을 써왔던 게 사실이었다. 하지만 2000년대 초반부터, 디지털 미디어의 가속적(加速的)인 발달과 한글을 이해하는 독자층의 감소로 인해, 게다가 활자매체(活字媒体)의 사향(斜向)이란 막아설 수없는 시대변천에 의한 신문구독자 수가 줄어듦으로 해서, 나의 글에 대한 반응도 그 도수(度數)가 차츰 줄어 가고 있음을 피부로 느끼게 하였다. 게다가 이 지면에 함께 칸을 매워 오던 이 북가주지역의 많은 동료 필자들이 저 세상으로 먼저 떠나 버렸을 뿐 아니라, 근자에 와서는 많은 수의 고정필자가 글쓰기를 중단했을 뿐 아니라 오랫동안 나와 서로 격려하며 글을 써 오던 K문우 마저 집필횟수를 줄인 시점에서, 어쩐지 길동무 없는 외길을 나 혼자 걸어가고 있다는 외로운 생각을 갖게 한다. 그래서 집필 24년을 마감하는 지난 해 12월로 수필산책 집필의 그 막을 내릴까 마음을 먹었다. 그런데 내 주변의 몇몇 문우(文友)들이 나의 집필중단을 극구 만류했었다. 그 이유는 노경(老境)에 그가 하던 일을 갑작스럽게 중단하면 정신건강(精神健康)면에서 좋지 않다는 점을 들어서 말이다.
한편으로 내가 이 작업을 새해까지 보듬고 넘어 온 또 다른 이유가 있다면 그건, 노(老)배우가 그가 밟았던 연극무대에서 쉽사리 떠나지 못해 색 바랜 연극대본을 또 펼치고 펼쳐 보는 까닭이 그가 밟았던 연극무대에 대한 향수(鄕愁)때문인 것과 같다. 그 향수란 왕년(往年)에 받았던 관중으로 부터의 박수 소리, 바로 그것이 아니겠는가.
그래서 나는 최장수(最長壽)필자란 명찰을 가슴에 달고, 동해 바다 아침햇살의 밝음과 희망만큼이나 아름다운 해질 무렵 저녁노을 빛깔의 영롱(玲瓏)함을 생각 하면서, 이 칸을 매우는 작업이 내일 끝날지 아니면 다음 해에, 그렇지 아니면 먼 훗날에 끝날는지 몰라도, 내 인생의 아름다운 저녁노을을 바라면서 좋은 글의 구상과 완성을 위하여 많은 밤을 지새울 것이다.
새해를 맞는 독자 여러분의 건승(健勝)을 하나님께 비는 바이다!
(아동극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