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의 창] 송용자 ㅣ 어느 기분 좋은날
2011-12-26 (월) 12:00:00
비가 내린다. 캘리포니아의 겨울은 그렇게 오고 있다. 빛깔 고운 낙엽들은 이별도 채 고하기도 전에 비 바람에 좇기여 어디론가 가버리고, 누렇게 들뜬 산들은 푸른 옷으로 갈아입으며 겨울 준비에 바쁘다. TV 기상대의 예보를 접하니 나도 겨울준비를 서둘러야 할까 보다. 문득 옛날 옛적의 우리나라 라디오에서 듣던 일기예보가 생각났다. “때때로 개이거나 흐리거나 비가 오겠습니다.” 지금 생각해도 낄낄거려지는 일기예보다. 얼마나 답답했으면 세가지 날씨를 다 예고를 했을까.
마음속에 흘러 넘치는 겨울, 더 이상 그 마음을 감당할 수 없을 때 나는 훌쩍 전철을 타고 샌프란시스코의 노천 Café로 간다. 따듯한 커피를 시켜놓고 오고 가는 사람들을 구경하다 보면 내 얼굴의 표정도 그림이 그려진다. 무표정한 얼굴, 미소가 금방 터질 듯한 얼굴, 다정한 얼굴들, 수많은 표정의 얼굴에서 삶의 고뇌를 읽기도 하고 기쁨을 엿보기도 한다.
문득 샌프란시스코의 하늘로 울려퍼지는 아리아, 깜짝 놀라 소리나는 쪽으로 달려갔다. “누가 라디오를 이렇게 크게 틀어놓았담” 내 귀가 즐거우니 발길도 가벼워진다. 오페라 ‘나비부인’의 아리아를 터질 듯한 몸집의 여인이 부르고 있었다. 옹기종기 모인 청중들 앞에서 행복한 얼굴로 열정적으로 부르는 노래는 예쁜 구슬이 은쟁반에 굴러가듯 아름답고 청아하다. 속으론 “웬 횡재야, 이런 쓸만한 공짜구경을 하다니, 오페라하우스에 출연해도 밑지지 않을 목소리네.” 노천 심포니 홀에서의 프리 공연, 즐거운 마음으로 CD를 한장 사들고 마켓 스트리 쪽으로 가니 또다른 공연이 펼쳐지고 있있다. 젊은 사람들의 댄스공연, 어쩜 저런 재주로 한손 짚고 돌고 한발로 앉아서 돌고 말론 표현할 수 없는 현란함이 눈길을 끈다.
어느새 내 마음은 차가운 겨울에서 포근한 겨울로 돌아와 있었다. 손수레에서 파는 달콤한 churro를 사먹으니 이순간만은 천상천하 유아독존 기분이 든다. 단돈 2달러로 약간의 허기도 해결했으니 말이다. 삶에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 명쾌한 대답은 없는 것 같다. 때로는 떠들썩한 군중 속에서 나를 찾아내는 것도 하나의 현명한 대답이 될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을 막연히 해본다. 겨울 속에서도 찬란한 빛깔을 뽑내는 제라늄, 노을에 잠겨가는 금문교의 아름다운 자태, 샌프란시스코는 살 만한 도시라 생각한다.
(주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