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의 창] 송용자 ㅣ 말은 요술쟁이
2011-12-12 (월) 12:00:00
세월은 유수와 같이 흘러 어느덧 긴 시간이 흘렀습니다. 사춘기 때 쓴 편지 첫구절은 늘 이렇게 시작하였다. 얼마나 멋진 말인지 쓰고 나서도 내 자신이 대견스러워 몇번이나 되풀이해서 읽은 적도 있었다. 그 말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정말 알지 못하고 써먹은 것이다. 어렸을 적에 근사함직한 기억은 나이가 들어도 항상 머리속에 남아있다. 그렇게 오랜 시간이 걸려 여기까지 흘러온 다음에야 글 구절이 진지하게 다가왔다. 정말 세월은 유수와 같이 흘러가고 말았다.
“어머 그동안 많이 늙으셨네” 십년만에 보는 교회 자매의 얼굴엔 반가움이 흘러 넘친다. 순간적으로 “많이”라는 단어가 가슴을 탁 쳤지만 “어머 자매님은 그대로네” 섭섭함을 감추고 약간의 아첨까지 보태니 그녀의 기분은 만땡인 것 같다. 거미줄처럼 가느다란 신경줄은 하찮는 말 한마디에 아프고 상처받는다. 십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는데 십년이 나를 늙게 하는 게 당연하지만 “많이”라는 말까지 덧붙여서 건네준 인사는, 아직도 별이 빛나는 밤이 좋고 낙엽이 흩날리면 슬퍼지는 나에게 섭섭한 마음을 안겨주었다. 거울 앞에 서니 자매의 말처럼 많이도 변해있는 모습이다.
사실은 마음 구석에서 문득 고개를 들고 나를 보는 허무함을 그녀가 한번 툭 건드려준 것뿐인데, 상처 입은 사람처럼 아프다. 아이를 어른으로 만들고 젊은 사람을 늙은이로 만드는 시간을 타고 살아온 내가 아닌가, 내 마음을 내가 간파하니 다시 평소의 마음이 된다. “지극히 솔직한 자매야” 생각하고 나니 미소가 떠오른다. 모든 생각을 좋은 쪽으로만 생각하니 맑은 하늘처럼 마음이 즐거워진다. 어차피 인생은 두번 살 수가 없는 것이기에 애틋하고, 순수하고, 예쁜 말들로 수놓고 싶은 욕심이다. “어머 여전히 고우시네요” 오랫만에 만난 미세스 리의 인사는 기분좋은 하루를 만들어 주었다. 아무렇지도 않은 말 한마디가 사람의 마음을 즐겁게 할 수 있다는 사실은 또 하나의 배움이 되었다.
말은 추억의 씨앗이 되기도 하고 기쁨의 씨앗이 되기도 한다. 보석 같은 언어로 아름다운 이야기만 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래서 아름다운 추억으로만 가슴을 채울 수 있다면. 나를 많이 늙게도, 또 곱게도 만드는 말은 참 요술쟁이다.
(주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