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피가 그리운 계절이다. 우기로 접어드는 베이지역의 초겨울은 공기가 맑고 투명해서인지, 촉촉한 바람 을 타고 실려오는 진한 커피향은 절대 뿌리칠 수없는 악마의 유혹처럼 나를 끌어당긴다. 날이 흐리면 흐린 대로, 기압이 낮으면 낮으대로 커피의 맛과 향은 더욱 풍부해지며 그 깊이를 더해 가는데….
즐겁게 저녁식사를 마친 후, 커피 한 잔을 들고 지는 노을을 바라볼 때, 바쁘게 일을 끝내고 비를 맞으며 돌아온 날, 내려지는 커피 한잔을 기다릴 때, 톡톡톡 창문을 두드리는 빗방울 소리와 커피 드립소리가 은은한 향과 함께 경쾌한 하모니를 이루면 어느덧 피곤은 사라지고, 입가엔 엷은 미소와 함께 하루에 대한 감사가 몰려온다.
20여년 전, 수습딱지를 막 뗀 기자초년병 시절, 처음 취재를 나간 곳이 변두리 복덕방이었다. 컴퓨터로 부동산정보를 모아놓고, 고객관리 프로그램도 돌린다 하여 방문한 그곳서 처음 맛본 커피는 결코 잊을 수 없다. 날계란 노른자와 참기름을 넣은, S다방 김양이 배달해준 토종 한국식 커피(처음엔 쌍화차인줄 알았다).
마감 때마다 컴퓨터 옆에 열 댓잔씩 쌓이던 자판기 커피. 늦깎이 유학을 온 남편 따라 미국에 와 신앙으로 외로움을 달래던 시절, 교우들과 새벽기도를 마치고 나누던 커피 한잔의 따스함. 약속한 날짜를 맞추느라 시간에 쫓겨 밤샘작업을 하며 퍼부어 넣었던 쓰디쓴 커피의 기억.
오랜 시간을 함께 했던 목장식구들이 타주로, 고국으로 떠나갈 때 마지막으로 나눴던 눈물의 커피 한잔. 아플 때마다 내려가지고 와서 엄마 빨리 나으라며 기도해주고 달아나던 아들녀석의 사랑이 담긴 커피. 엄마가 제일 좋아하는 커피를 마시면 아픈 것도 빨리 나을 것이라 믿고 있었다.
내게 ‘커피’는 단순한 기호식품이기 전에 만남이자 그리움이고, 사랑이자 기쁨과 눈물이 교차했던 추억의 매개체다. 한잔 한잔 쌓일 때마다 시간과 공간을 더하고 인연에 인연을 더해가며, 차곡차곡 모아 한 장씩 넘겨온 추억의 앨범같은 존재. 세상에서 제일 비싼 커피가 인도네시아 커피 ‘루왁’이라고 했던가. 사향 고양이가 먹고 배설한 커피 원두를 갈아 만들어 맛과 향이 독특하다는 그 커피도 내 인생의 커피맛과는 바꿀 수 없을 것 같다.
정겨운 만남, 그리운 사람이 있었기에 더욱 기억에 남는 커피. 맛의 감동 보다는 함께 했던 사람으로 인해 더욱 소중했던 커피. 커피가 그리운건지, 사람이 그리운건지. 그 둘과 함께 했던 시간이 아쉬운건지, 변함 없이 그리운 커피같은 사람, 나부터 그런 이가 돼야 할 텐데…
오늘도 커피한잔 앞에 놓고 생각이 많아진다.
(프리랜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