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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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정서 지키고 삽니다”

2011-11-11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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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화천서 만난 작가 이외수

그는 화천에서 6년째 살고 있다. ‘감성마을’이라는 이름도 그가 지었다. 작가에게 거처를 마련해준 지방자치단체는 화천이 처음이란다. 대신 그는 화천을 알리는데 힘쓰고 있다.

그는 한국에서 트위터 제왕으로 불린다. 팔로우어가 74만 명이라고 했다. 몇 개월 전 화천축제를 준비했는데 구제역이 확산되자 취소된 적이 있다. 축제를 위해 준비한 찐빵 2,000 상자를 처분하는 게 문제가 되었는데, 트위터를 통해 사정을 말했더니 이틀 만에 팔려버렸다.


“홀로 문학의 길을 걸어왔다”는 그의 말은 많은 의미를 포함한다. 그는 문단에서 이단아, 독립군 취급을 받는다. 문인들의 모임과는 발을 끊고 독자에게 사랑받는 글을 쓰겠다는 작가다. 그래서 문단은 그의 작품에 주목하지 않았고 문학성도 엇갈린 평가를 받고 있다.

그러나 그는 2010년 인터넷 서점 YES 24가 주최한 네티즌 선정 “2010 대한민국 대표작가” 1위에 올랐다. 문단의 외면을 독자가 채워주고 있는 셈이다.
그는 1971년 <강원일보> 신춘문예에 당선되었다. 그러나 실력도 없는 주제에 당선되었다는 자괴감이 들어 3년간 산에 들어가 문장수업을 했다. 작가가 되었지만 가난 때문에 첫 아이를 내 손으로 받고, 그날로 책장사를 나갔다고 했다. 인생이 괴로워 석달 내내 술을 마시기도 했고, 취하면 개집에서 쓰러져 자기도 했고, 파출소에 들어가 깽판을 치기도 했다. 철문을 만들어 걸고 5년 동안 두문불출 하며 책을 쓴 적이 있다. 1992년에 발간한 ‘벽오금학도’라는 책이다.

얼마 전 그는 광고 출연료 6,000만원을 받아 전액 화천군에 장학금으로 전달했다. 주고받으며 사는 게 인생이다.

정치 쪽으로 화제를 돌렸다. 중립이라고 선을 그은다.
그는 아들이 둘이다. 큰아들은 영화감독이다. 올해 조선일보 신춘문예에 소설로 등단한 며느리로 화제를 옮겼다. 설은영씨다. 집안에 경사가 났다고 환히 웃는다. 소설가 두 분이 작품을 쓰고 아드님이 영화를 만들면 안성맞춤이겠다고 했더니 또 웃는다. 그렇잖아도 음악 미술 문학 영상 공연을 겸한 복합적인 활동을 계획하고 있다고 한다.

미국 한인들에게 하실 말씀이 없냐고 물었다. “향수병을 앓고 계실 한인들에게 작가로서 세계무대에 앞장서지 못한 점 사과합니다. 오실 때 반길 수 있도록 우리 정서를 보존하도록 힘쓰겠습니다”라고 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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