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섯 달 동안 여성의 창을 통하여 세상사를 엿 볼 수 있었다. 늦봄에 발을 들여 여름도 보내고 이제 가을끝자락에 서니 여성의 창이 국화향기 그윽하던 고향집처럼 정이 들었다.
가을은 그리움을 반추하는 계절이기도 하다. 그 대상이 곁을 떠나간 사람이거나 기억에서 희미해진 추억의 편린일지라도 색채가 더욱 선명해지고 숨결이 되살아난다.
국화꽃이 필 때면 꽃시장을 찾는다. 집안에 국화화분 하나만 들여놓아도 금세 가을향기로 가득차기 때문이다. 창틀에 화분을 올려놓고 바라보니 아버지가 재배하시던 국화꽃이 소슬바람처럼 마음틈새를 파고든다.
아버지는 가을마다 마을에서 제일 탐스러운 대국(大菊)을 피워내셨다. 손가락 길이만큼 국화 대를 잘라 모래상자에 묻어 툇마루 밑 그늘에 두고 뿌리가 내릴 때까지 조석으로 물을 주셨다. 한 뼘쯤 자라나면 하나하나 화분에 옮기고 순과 가지를 쳐 모양을 잡아 키우면 함박꽃만 한 국화꽃이 피어났었다.
세숫물도 떠다 받쳐야하는 분인데 화분마다 돌아가며 손수 물이나 거름을 주고, 행여 잎사귀에 진딧물이라도 끼면 천 조각으로 일일이 제거하는 지극정성이 마치 삼매경에 들어 정진하는 예술가와 흡사했다.
음력 9월 9일 중양절(重陽節)이면 국화가 만개하였다. 매해 이날이면 아버지는 동네유지들을 집으로 초대하여 국화꽃을 함께 완상하며 국화주를 대접하셨다.
취기가 거나해질 즈음이면 사랑방에서 시조 읊는 소리도 들리고, 만고강산이나 강상풍월 같은 단가(短歌)가락도 들려오곤 했었다.
비록 시각의 차이가 다소 있을지언정 여성의 창을 통해 세상사를 함께 관조하여온 집필자들의 귀한 단상을 읽으면서 국화꽃향기 같이 그윽한 그들의 마음씨에 감동했다.
아버지가 정성껏 키우셨던 국화가 제각기 모양과 색감이 다르지만 하나같이 소담스러운 꽃송이를 피워냈듯이 필진대열에 동참하여 글을 쓸 수 있어 행복했다.
마음의 창을 깨끗이 닦아내고 세상을 바라보면 만사만물이 아름답고, 무염지욕(無厭之慾)에서 한 발치 물러나 허심의 눈길을 던지는 곳에는 아름다운 꽃이 피어난다.
한국일보의 투명한 여성의 창을 통해 무연(無煙)의 향긋한 꽃향기가 철따라 독자들의 마음속으로 스며들었으면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