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정찬열의 최전방 지역 도보행진 <7> 화천 평화의 댐
평화의 댐에 세워진 기념비. 평화의 댐은 건설 배경을 놓고 한때 논란이 됐지만 지금은 유명 관광지로 인기가 높다.
길이 601m, 높이 125m 댐 아래 내려다 보니 아찔
세계 분쟁지역서 모은 탄피로 만든 ‘평화의 종’
횡단 7일째다. 7시30분 출발. 저녁에 소나기라도 한 둘금 지나갔을까. 길이 촉촉이 젖어 길게 누워 있다. 나무숲이 하늘을 덮은 텅 빈 길을 혼자 걸어간다.
평화의 댐 가는 길. 언덕 위에서 부스럭 소리가 나더니 시커먼 짐승 한 마리가 툭 뛰어나온다. 깜짝 놀랐다. 쏜살같이 내 앞을 지나간다. 산양이다. 아래쪽으로 뛰어가다가 시멘트 난간 구멍을 통해 넘어가려고 몸부림친다. 머리는 빠져 나갔는데 엉덩이가 걸려 버둥거린다. 얼른 빠져나오더니 엉겁결에 내 쪽으로 달려온다. 나와 마주치더니 다시 뒤돌아 길 따라 달려가 버린다. 저런 경우에 혼비백산이라는 말을 쓰는 모양이다. 잠깐 사이다. 서둘러 사진을 찍었다. 다행히 한 장이 잡혔다.
산양은 높은 산 가파른 절벽을 오르며 산다. 기품을 지닌, 산 주인이다. 사람 발길에 쫓겨 전설처럼 사라져 버려 천연기념물 217호로 정했다. 그 귀하다는 야생 산양을 목격하다니!
길가 철쭉꽃이 곱다. 작은 터널을 지나간다. 이제부터 화천군이다. 평화의 댐이 나타난다. 말도 많았던 그 댐이다. 길이 601미터 높이 125미터다. 북한이 금강산댐을 건설하자 수공에 대비하고 홍수피해를 막아야 한다는 명분으로 국민 성금을 거둬 건설한 댐이다. 89년에 80미터 높이의 댐을 완성했다. 금강산댐의 위협이 부풀려졌다는 이유로 댐 무용론이 꾸준히 제기되어 왔다. 그러다가 1995년 집중호우 때 홍수조절 기능이 입증되었다. 금강산댐이 붕괴되는 사고에 대비해 댐의 높이를 125미터로 높이기로 했다. 2차 공사는 2005년에 완공되었다.
댐 아래를 내려다보니 아찔하다. 평소에는 저렇게 비워놓고 큰 비가 내리면 물을 가두어 놓았다가 천천히 방류하는 모양이다. 세계 평화의 종이 걸려 있다. 이 종은 세계 각국 분쟁지역에서 수집된 탄피를 모아 만든 종으로 평화와 생명을 기원하는 의미를 담고 있다. 1만관으로 만들어진 이 종은 남북통일의 염원을 담고자 1만관 중 한 관을 분리한 9,999관으로 주조되었다. 통일이 되는 날 떼어낸 한 관을 추가하여 세계평화의 종을 완성할 계획이라 한다.
노벨 평화상을 받은 이들의 사진과 어록이 세워져 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의 사진 아래 2000년 노벨평화상 수상 이유가 설명되어 있다. ‘평화는 사랑이아’라는 친필로 쓴 평화의 메시지가 새겨져 있다.
평화의 종을 지나니 비목 공원이 나온다. “우리나라의 대표적 가곡인 ‘비목’을 기념하기 위해 조성되었다. 비목의 유래는, 1960년대 중반 평화의 댐에서 북쪽 12킬로 떨어진 백암산계곡 비무장 지대에 배속된 한명희라는 청년 장교가 잡초 속에서 6.25때 전사한 무명용사의 녹슨 철모와 돌무덤을 발견하고 ‘비목’의 노랫말을 지었으며, 그 후 장일남이 곡을 붙여 비목이라는 가곡이 탄생되었다.”
공원 옆에 ‘비목’이 돌에 새겨 있다. “초연이 쓸고 간 깊은 계곡 양지 녘에/ 비바람 긴 세월로 이름 모를 비목이여/ 먼 고향 초동친구/ 두고 온 하늘 가/ 그리워 마디마디 이끼 되어 맺혔네” 비목 공원을 둘러보면서 전쟁의 비극을 다시 상기한다.
전시관을 둘러보았다. 매점에 들러 라면 한 그릇 주문해 먹고 비상식량으로 스니커 몇 개 보충했다. 평화의 종 부근에 사람들이 모여 있다. 타종을 한다고 한다. 한 번 치는데 2,000원이란다. 조국 통일을 기원하는 마음을 모아 종을 쳤다. 종소리가 멀리 퍼져 나간다.
날씨가 그만이다. 오늘이 어버이 날이어서 평일보다 사람이 많다고 안내원이 말해준다. 댐을 건너간다. 댐 아래쪽 호수에 배 한척이 하얀 물거품을 내뿜으며 달리고 있다. ‘벨팍’이라는 이름이 멀리서도 보인다.
산길을 오르기 시작한다. 지나가던 승용차가 멈추더니, “타고 가실래요?” 묻는다. 힘들게 오르는 모습이 안 되어 보였던가 싶다. 평화의 댐에서 화천 넘어가는 길이 제일 험하고 힘들 것이라는 말을 여러 번 들어서 각오는 했지만, 참 험산이다.
‘평화공원돌탑 소공원 조성’이라는 입간판이 서있다. “이곳은 통일안보 관광코스로 지정된 곳입니다. ‘호랑이 출몰지’로서 전 국민의 관심이 날로 증가하는 곳이기도 합니다.” 호랑이가 출몰하는 지역이라고? 좀 으스스하다. 진짜로 호랑이가 나타날 것만 같다.
걸어온 길을 내려다보니 첩첩이 산이다. 숲이 바람 따라 넘실거린다. 수만 가지 초록, 저 초록을 어찌할거나. 며칠 째 초록 길을 걷고 있다. 초록이 몸에 배어 내가 초록빛깔이 되었겠다. 초록 물감이 뚝뚝 떨어지겠다. 한동안은 누군가 내 곁을 스치기만 해도 초록물이 들것만 같다. 초록 속에 진달래가 빨갛게 타오른다.
땀을 뻘뻘 흘리며 올라간다. 어제는 몇 평의 옥수수 밭도 보이던데 오늘은 가도 가도 산 이다. 어! 사람이 보인다. 등산로 곁에 ‘산불조심’이라는 띠를 어깨에 멘 할아버지 한 분이 서 계신다. 산불조심 기간에 주 5일 일한다고 했다. 이곳에 하루 종일 서 있는 게 보통 힘든 일이 아니겠다. 일당 4만3,000원이란다.
목이 마르다. 물 병 비운지 벌써 오래다. 고갯마루에 이르렀다. 춘천에서 나들이 왔다는 가족들을 만났다. 차에서 물 한 병을 꺼내다 주신다. 물이 달다.
해산터널을 지난다. 1,986미터다. 오르막이 길면 내리막도 길다. 길가에 차를 대 놓고 사람들이 나물을 뜯고 있다.
종일 산길을 걸어, 드디어 마을에 도착했다. 풍산 3거리다. 삼거리 상점 너른 평상에 사람들이 앉아 있다. 걸어오느라 목도 마르고, 사람들과 얘기도 나누고 싶어서 맥주를 너덧 병 주문해 함께 마신다.
나이든 주인 내외가 말다툼을 시작한다. 할아버지 혼자서 군청에서 준비한 어버이날 잔치에 참석하고 오신 모양이다. 가슴에 꽃을 세 개나 달고 계신다. 80이 넘으셨다는데 한 잔 하셨는지 얼굴이 불콰하시다.
“나는 집지키는 개지 뭐, 전화 한 통화 해주면 어디가 덧나나?” 할머니가 언성을 높이신다. “아 그러니께 함께 나갔다 오자고 했잖아요” 할아버지가 한 말씀 하신다. “아니, 내가 나가면 이 상점은 누가 보고요. 이거 문 닫으면 누가 돈 한 푼이나 준답디까?” 할아버지가 헛기침을 몇 번하시더니 슬그머니 저쪽으로 자취를 감추신 다음, 할머니가 혼자 말을 하신다. “그래도 저렇게 건강하게 마실 다니는 것만도 감사할 일이지…”
사람 사는 게 저렇다. 저렇게 티격태격하면서 한 평생 살아가는 게 인생이다. 할아버지의 헛기침 속에 담긴 메시지를 할머니가 해득하고 할머니의 푸념을 할아버지가 빠삭하게 안다. 나이가 들면 젊어서 보이지 않았던 게 보이기 시작한다. 시집보낸 딸이 사네 못 하네 친정 와서 타박을 해도 무심한 척 하던 일을 계속한다.
나이 든 어른들은 다 안다. 그렇게 타시락타시락 싸우면서 살아가는 것이 인생인 것을, 겪어 봐서 안다. 젊은이는 어른의 말을 잘 믿지 않는다. 어른이 되어 봐야 비로소 안다. 아하, 그 때 그 말이 이 말이었구나. 때 늦게 알게 된다.
그래서 때로 어른의 눈에 젊은이들이 버릇이 없어 보인다. 양의 동서나 고금을 막론하고 똑 같다. 오죽했으면 고대 이집트 지하 벽에 ‘요새 아이들은 버릇이 없다’는 낙서가 남았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