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의 창] 유영경 ㅣ 가을 저녁 마당에 서서……
2011-10-19 (수) 12:00:00
저녁 설거지를 마치고 보니 어느새 밖이 어두워져 있었다. 해가 많이 짧아졌나 보다. 환기를 위해 열어두었던 문을 닫으려다 말고, 뒷마당으로 나가보았다. 조금 쌀쌀한 밤공기가 마음을 시원하게 만드는 듯 했다. 의자에 잠깐 앉아 흥얼흥얼 입에 익은 노래 한 곡을 불러보았다.
‘바람이 서늘도 하여 뜰 앞에 나섰더니 서산 머리에 하늘은 구름을 벗어나고……’
오늘따라 친정 아버지 생각이 많이 난다. 어린 시절 아버지와 함께 저녁 식사 후 마당에 나가 노래 부르던 기억도 난다. 이렇다 저렇다 말씀이 없으셨던 아버지는 그냥 말 그대로 경상도 분이셨다. 하지만 난 아버지가 참 다정한 분이셨던 걸 안다. 어릴 적 우리 집에는 책이 참 많았다. ‘세계 명작 소설 전집’, ‘한국 대표 단편 소설 전집’, ‘소년소녀 세계 문학 전집’ 등 대부분이 전집류들이었다. 출판사 외판원이셨던 친구분의 어려운 사정을 듣고 그냥 넘기지 못하실 때면 우리 집 책장에는 책들이 꽂혔다.
내가 우리나라 가곡의 가사를 많이 외우고 잘 흥얼거리는 것도 다정하셨던 아버지 덕분이다. 초등학교 입학 때 아버지에게서 ‘아름다운 우리 가곡 전집’을 선물 받았다. 연년생이었던 언니는 헨델이 금색으로 멋지게 프린트된 ‘세계의 명곡 전집’을 입학 선물로 받았었다. 이런 일들이 있을 때 마다 친정 어머니께서는 며칠 동안 아버지와 대화를 안 하셨던 것도 난 기억한다.
파란색 하드커버를 열면 빼곡히 꽂혀있는 카세트 테이프를 볼 때면 부자가 된 것 같았다. 가사와 곡에 대한 설명이 적힌 두꺼운 책을 펼쳐보며 초등학교 1학년이 뭐 얼마나 이해했을까 만은 그래도 난 정말 행복했다. 카세트에서 흘러나오는 가곡을 아버지와 함께 따라 부르던 시간이 많이 그립다. 아버지께서 정말 좋아하셨던 가곡은 ‘그 집 앞’이라는 곡이다. 무슨 추억이 있으셨던 건지 그 노래를 여러 번 반복해서 틀어보라 하셨다. 그리고 먼 하늘을 올려보시던 아버지의 깊은 눈빛을 기억한다. 아버지에게 특별했던 우리 가곡, ‘그 집 앞’을 나도 참 좋아한다. 근사한 태너의 목소리로 불려진 ‘그 집 앞’을 들으며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을 달래보려 한다.
(IIC 한국어 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