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여성의 창] 조옥규 ㅣ 달콤한 그리움

2011-10-14 (금) 12: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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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이 익어간다. 10월 달력에는 초가지붕위에 둥근 박이 여물어가고 돌담 따라 피어난 해바라기는 해님을 그리움으로 쫒다가 가슴이 까맣게 타들어간다.

장독대 옆에 핀 봉숭아꽃은 누구의 손톱을 물 드리려 저리도 붉을까. 분홍색, 보라색 과꽃은 동요가사의 시집간 누나대신 친척아주머니를 떠 올린다.

어릴 적 고향에서 육촌형제들과 이웃해 살았었다. 일찍이 남편을 여읜 당숙아주머니가 허름한 초가삼간에서 삼남매를 키우며 사셨다. 우리 어머니와 사촌동서지간이 되는 아주머니는 선천적으로 유머감각이 남달랐었는지 동서끼리 집안일을 하실 때면 웃음소리가 끊이지 않았었다.


아주머니가 사는 초가집은 들마루도 없고 방이라고 해야 서너 명이 다리 뻗고 앉기에도 비좁았었다. 그런데도 아주머니는 방이 아담하니 더욱 정답지 않느냐고 말씀하셨다.

지금 생각해보면 아주머니는 주어진 여건이나 현실이 어려울지언정 그 속에서 분수를 지키며 보다 나은 내일의 삶을 추구하는 긍정적인 사고를 가진 분이셨다. 홀몸으로 자식 셋을 양육하기에도 벅찼을 터인데 언제 보아도 늘 명랑하고 밝은 표정을 잃지 않으셨다.

언제였던가, 아주머니가 봉숭아 꽃잎을 곱게 찧어 내 손톱에 올리고 아주까리 잎으로 감싸 동여매 주시며 조금만 참고 기다리면 네 손가락에 고운 꽃이 필거라고 하셨다.

정겨웠던 초가집풍경은 이제 쉽게 찾아볼 수 없다.

첨단문명시대에 편리한 생활과 안이한 습성에 젖어 살면서도 가을만 되면 고향풍경이 달콤한 그리움으로 다가온다.

아주머니의 초가삼간에서 함께 먹던 찐 고구마와 삶은 옥수수는 얼마나 맛있었던가. 정다운 사람들끼리 오순도순 나누는 대화 속에 웃음꽃을 곁들였기 때문이리라.

과꽃이 예쁘게 피었던 장독대에 정화수 한 사발 떠 놓고 정성들여 축원한 보람이었을까, 항상 이웃사랑, 나라사랑 그리고 인내와 노력을 강조하시더니 자식들이 모두 나라의 훌륭한 일꾼이 되었다. 더욱이 큰아들이 입신양명하여 고향의 군수가 되어 귀향했을 때 아주머니는 얼마나 감격스럽고 자랑스러웠을까.

이제는 세월이 흘러 어른들은 모두 떠나고 초가집마저 사라졌다. 달력의 초가집을 보고 있자니 시공을 뛰어넘어 아주머니가 싸리문을 밀고 나오실 것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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