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여성의 창] 윤효순 l DR.김의 첫 휴가

2011-09-13 (화) 12: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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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가철이면 몇 년 전에 있었던 DR.김 가족의 특별한 휴가가 생각난다. 신참 치과 의사가 되어 먼 곳에서 일을 하고 있는 그가 토요일과 주일에 집을 빌려 달라는 좀 황당하고 어리광이 배어있는 전화를 해왔다. 우리는 그들 부부와 어린 쌍둥이들을 맞기 위해 부랴부랴 집을 치웠다.

약속한 토요일 오후에는 차 트렁크에 맛있는 음식을 가득 싣고 당도하였다. 여장을 푼 그들은 돈 벌면서 처음 맞는 휴가를 그 동안 신세졌던 분들을 찾아다니며 인사를 하는 중이라고 했다. 어렵게 공부하고 있을 때 이곳 교회는 많은 도움을 주었기에 예배를 드리고 주일 저녁을 같이하고 싶어 왔노라고 했다.

그 고백은 한 번도 생각지 못했던 귀한 의미가 있는 또 다른 방법의 휴가를 나에게 알게 했다. 소중하게 얻어진 휴가를 그리 결정하기가 쉽지만은 않았을 것이다. 혼신을 다하여 공부하느라 지쳤을 몸과 마음을 한번쯤 경치 수려한 산 속에서 쉬고 싶었을 DR.김의 휴가, 아이들과 남편 뒷바라지로 작은 여유조차 누릴 수 없었던 생활, 하얀 백사장과 파란바다가 유혹했을 Mrs.김의 휴가, 무엇보다도 쌍둥이들 마음속에 자리한 디즈니랜드의 휴가를 어떻게 다 물리치고 부부가 의기투합해 다른 사람 집으로 음식까지 싸 들고 와서 그렇게 행복해 하는 모습이라니.


저녁식사 후 시원한 바람이부는 뒤뜰로 나갔다. 엷은 등불아래 둘러앉아 기특한 휴가를 택한 그들의 이야기를 듣기로 했다.

주일마다 기도하며 어깨 두드려 주셨던 목사님을 비롯하여 가족 부양과 공부가 힘들어 포기하려고 했던 어느 날 한번만 더 매달려 보라던 S형제님의 눈물 섞인 조언은 지금의 자신을 만들었다고 했다. 수중에 한 푼이 없어 암담했을 때 E성도님께서 주머니 속에 살짝 넣어주었던 백 불짜리 한 장은 마음 안에 몇 백 배 값진 것으로 간직 되어 있어 평생을 조금씩 갚아야 할 것 같다고 했다.

말없이 밑반찬 차 앞에 놔두었던 어느 성도님 그리고 또…

끝없이 이어지는 귀한 분들의 이야기는 밤이 깊어가는 줄도 모르고 환하디 환하게 이어졌다. 별 조차 감동을 받아 놀랜 듯 반짝였든 그 밤이 휴가철마다 떠올라 나를 행복하게 한다.

(자영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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