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아버지!
아버지만 생각하면 나는 목젖이 아프고 콧등이 시끈하다. 유난히 정이 많으셨던 아버지는 술과 친구들을 무척 좋아 하셨다. 엄마한테 잘해준것도 없으면서 늘 큰소리만 탕탕 치셨던 철부지 울 아버지가 엄마가 돌아가시고 홀로 사신7년을 생각하면가슴이 미어진다. 아직 출가시킨 자식없이 줄줄이 대학을 보내야 했고 더군다나 막내딸은 고3이었지, 당신 혼자서 버틴 세월이 얼마나 힘이 드셨을까?
울 아버지는 가난했다. 많이 배우지도 못했다. 그런 아버지는 용케도 산골에서 읍내로 그리고 서울로 자리를 옮겼다. 자식들을 공부시켜야 한다고. 집도 늘 학교와 가까왔다. 나는 구구단도 아버지한테 배웠다. 야단한번 안치시고 조근조근 가르쳐 주신것을 기억한다. 엄마는 날 쥐잡듯 키웠지만 반면 아버지는 늘 내편이다. 한번은 중학교때 일이다. 아버지 생신이라서 엄마는 밤새 음식장만에 아침부터 들이닥친 손님때문에 내도시락 챙길 경황이 없었다.
아무거나 싸서 학교가라고 다그치는 엄마가 야속해서 그냥 와버렸다. 4교시후 점심시간이다. 멍하니 창밖을 보고 있는데 아버지가 서 계신것이다. 내가 배고플까봐 부지런히 오셨단다. 엄마한테는 비밀이라고 내손에 용돈까지 쥐어 주셨던 아버지! 그날은 행복했습니다.
그랬는데 언제부턴가 아버지가 미워지기 시작했다. 철이들면서 엄마 혼자 고생하며 사는 것이 눈에 보이기 시작했다. 몇번의 사업실패와 가산탕진으로 엄마가 팔 걷어 부치고 자식들과 살아야했다. 억척스런 엄마덕에 그나마 우리는 궁색함을 면하고 조금씩 나아졌다. 아버지가 부끄러웠다. 그런데도 아버지는 한번도 나를 혼내지 않으셨다. 오히려 잘해주지 못한것을 미안해 하셨지.
지금 내가 그 나이가 되어 보니 알겠다. 막상 살만하다 싶은데 엄마 먼저 세상 등지고, 4남매 대학까지 보내느라 얼마나 몸과 마음으로 고생하셨을까? 의지할곳은 세상에 없고.
할머니에게 극진한 효자였던 불쌍하신 내 아버지는 그렇게 살다 엄마곁으로 가시었다.
말년에 엄마가 해준 김치가 젤 그립다면서 약주한잔에 서러움담아 큰딸에게 하소연하셨던 그 아버지.
당신에게 좋은 옷한벌, 만난것 한번 제대로 해드리지 못한 이 불효자식은 아버지를 자랑스럽게 생각합니다. 울 아버지가 최고였다고…
꽃잎이 바람에 날리는 봄날이면 당신이 좋아하셨던 약주한잔에 사랑가득 담아 드리고 싶습니다. 아버지 보고 싶어요.
(자영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