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의 창] 강영혜 ㅣ 부부싸움은 칼로 물 베기
2011-06-10 (금) 12:00:00
며칠 전 친구가 이제 남편과는 도저히 못살겠다며, 집을 나왔으니 당분간 우리 집에 좀 와있게 해달라고 부탁을 했다. 친구의 부탁이니까 이유 불문하고 당연히 들어주고 싶었지만 단호히 거절했다. 친구는 내게 박절하다고 했다.
이런 경우에 부부가 아예 헤어지면 몰라도 다시 원점으로 돌아가 사이좋게 살게 되면 혹 돕거나 역성든 사람만 죄인처럼 되고 결국 서먹한 관계가 돼버리고 만다.
이십여 년 전, 타주에서 이곳으로 이주한 베스트 프렌드 가족과 한 동네에 살게 됐었다. 아직 이곳에 정 붙일 일 없던 친구는 매일같이 아이를 데리고 우리 집에 와 즐거운 시간을 보내곤 했다.
친구 남편은 퇴근하고 집에 가도 늘 빈 집이요, 가족이 보이지 않은 날이 빈번해지자 많이 속상해했고 그래도 무던히 잘 참던 어느 날 저녁, 작정하고 우리 집을 찾아왔다. 그러더니 나를 보고 다짜고짜 "아예 이사람 데리고 사시죠"하는 것 아닌가? 그동안 우리는 가족처럼 가깝게 지내던 사이였다. 당황한 나는 곧 기분이 상해서 말대꾸를 했는데, 설상가상 친구까지 개입하여 자기남편에게 일침을 가하니 결국 상황이 악화되었다. 흥분한 친구는 홧김에 이제 남편과 안 살 꺼니깐 맘껏 싸워도 된다고 허락(?)을 했고, 결국 친구남편과 나의 싸움으로 변해 버렸다. 속 좁은 나는 서로 만나지 말자고 선언하기에 이르렀다. 친구는 짐을 꾸려야 한다며 그날 밤 늦게 자기 집으로 돌아갔다. 다음 날이 휴일이었는데 아는 분이 내게 전화하여 친구 얘기를 전했다. 그분 말씀이 오늘 오전에 한국 마켓 앞에서 분명히 봤는데 차 속에서 내 친구가 다정하게 남편의 입에 인절미를 넣어 주고 있더란다.
충격적이었다. 나는 안 산다는 친구 말만 믿고 그 남편한테 마음껏 퍼부었는데…. 너무 실망하여 한국의 친정어머니께 전화해서 억울하다 했더니 어머니는 한숨을 내쉬며 나의 정신이 온전한가를 물으셨다. 잘 달래지는 못할망정 부채질을 해서 친구를 꼭 갈라서게 해야 되겠냐고 마구 나무라셨다.
"부부싸움은 칼로 물 베기"라는 말이 그래서 나왔던가. 아무튼 그날 이후 나와 친구 남편과의 관계는 얼마나 서먹했었던가. 그 후로 수많은 세월이 흐른 지금, 친구 부부는 아직도 사이좋게 잘 살고 있다. 그들은 이미 이 일을 잊었을 줄 모르지만 내게는 아주 난처했던 사건이어서인지 선명하다. 그 일을 계기로 나는 어느 누구의 부부싸움에도 개의치 않는 철저한 방관자가 되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