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여성의 창] 조옥규 ㅣ 모란꽃이 피면

2011-06-09 (목) 12: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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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에 사는 친구가 생일축하 카드를 이메일로 보내왔다.

진분홍빛 탐스런 모란꽃들이 모니터 안에서 함박웃음을 짓는다. 마치 우리학교 화단에 피었던 모란꽃을 보는 듯 예쁘고 반갑다.

모란은 어느 꽃도 따라올 수 없이 크고 아름다워 화중왕(花中王)이라 불리지만 그 아름다움이 오래 가지 않는 꽃이다. 여왕처럼 기품 있고 우아하게 피었던 꽃이 떨어져 내리면 우리는 오월을 보내고 유월을 맞이하게 된다.


내 인생의 봄을 열어주고 어느 날 떨어진 꽃잎으로 떠나가신 여고생 시절의 선생님이 모란꽃 위에 어른거린다.

오월의 시골학교 화단에는 모란꽃이 색색으로 피어났었다. 방과 후 음악실에 남아 노래연습을 하다 창밖을 내다보면 어느새 밤은 어스름하게 내리고 텅 빈 교정엔 모란꽃들만 친구 되어 내 노래에 귀를 기울여 주곤 했었다. 그 당시 나는 김용호 시에 조두남 작곡인 <또 한 송이의 나의 모란>이라는 가곡에 매료되어 있었다. 아름다운 노랫말이 좋아 부르던 이 노래가 내 운명의 서곡이 될 줄 어찌 알았을까.

일본에서 음악전공을 하신 연로하신 교감선생님이 고등학교 2학년 봄에 우리 학교에 부임해 오셨다. 그날도 성악가를 꿈꾸며 연습에 열중하고 있었는데 뜻밖에도 그 분은 행운의 여신처럼 나에게 다가와 당신이 피아노반주를 할 테니 노래를 불러 보라고 하셨다.

그 후로 선생님은 올바른 발성연습과 우리나라의 주옥같은 가곡과 또한 오페라를 교습해 주시며 나에게 정성을 쏟으셨다. 그 덕분에 일 년 후 모 대학에서 주최하는 콩쿠르에 입상을 할 수 있었고 장학금 혜택을 받고 대학에 갈수 있는 길을 열어 주셨다.

인생은 노래처럼 연습할 수 없는 본선무대다. 그러기에 젊은 날에 몰랐던 것들을 늦게서야 깨닫고 후회하게 된다.

어린 자식을 낯선 서울로 보낸 것 같이 노심초사 하셨을 선생님이 타계 하셨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바쁘다는 핑계로 안부조차 변변히 드리지 못한 내 자신의 우매함이 부끄러웠다. 함께 노래 부르며 쌓인 사제지간의 정이 오래오래 지속될 줄 알았는데 기다려 주지 않는 세월이 야속했다.

그동안 몇 번의 모란이 피고 졌을까. 지금도 내마음속에 선생님은 지지 않는 모란꽃으로 피어 사람의 도(道)를 노래한다.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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