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여성의 창] 조옥규ㅣ 폐인(廢人)이 되다?

2011-06-02 (목) 12: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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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 주말마다 나는 동영상을 통하여 아주 감동스런 무대를 만난다.

컴퓨터게임이나 인터넷 또는 방송드라마 등에 너무 심취하다가 일상생활에 심각할 정도로 지장이 있는 사람을 폐인이라 하는 신조어가 있다던데 나도 요즘 비슷한 증세가 생겼다. 날 꼽아 그 시간을 기다리며 마치 사랑의 열병에 걸린 사람처럼 하루 종일 노래를 흥얼거린다.

만나는 사람마다 붙들고 그 프로를 보느냐? 꼭 봐라, 당부까지 하게 되니 필경 폐인의 초기증상이 아닐까 싶다.


내로라하는 프로가수 일곱 명이 경합을 벌리는 방송프로가 있다. 이미 다른 가수가 발표해 우리들 귀에도 익숙한 곡을 배당받아 원곡의 기본을 살리면서도 각자 개성 있게 편곡하여 새 혼을 불어 넣는다. 가창력이 뛰어난 가수들이기에 막상막하의 경합이지만 서바이벌이라는 전제가 있어 한명이 탈락하고 대신 새로운 가수가 영입된다. 그들은 삼사 분의 공연을 위해 한 주 동안 내내 혼신의 노력을 기울여 연습하며 어떻게 하면 더 노래다운 노래를 부를 수 있을까 고민한다고 한다. 그 피나는 노력이 감동스런 무대를 연출한다.

세상을 살아가다 보면 누구나 크고 작은 감동에 젖어드는 순간이 있다.
길섶에 피어난 보잘 것 없는 풀꽃에게서 자연의 이치를 깨닫는 수도 있고, 양서를 숙독하면서 삶의 지혜를 터득하기도 하며 명곡을 감상하면서 마음속에 녹아드는 예술혼에 전율하기도 한다. 혹은 말기 암 선고를 받고서도 지구촌 먼 이웃을 돕기 위한 마지막 콘서트에서 해맑게 웃으며 열창하시던 이 태석신부의 숭고한 휴머니즘에 눈물을 흘리기도 한다.

인생길에서 만나는 감동은 세상을 살맛나게 하고 삶의 지표가 되는 펄럭이는 깃발이 된다.

무한한 창의력과 뜨거운 열망, 그리고 각고의 노력으로 꾸며진 공연을 보며 감동은 자신의 모든 역량을 연소 시켰을 때에야 비로소 가능하다는 생각을 다시금 해 본다. 그러기에 심사위원과 오백 명의 방청객들도 마음에 깊이 와 닿는 가수에게 높은 평점을 주지 않던가. 나도 내 주어진 일에 전력투구하다보면 언젠가는 누군가에게 자그마한 감동이나마 줄 수 있지 않을까. 이런 생각이 드는걸 보니 정말 폐인이 되었나 보다.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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