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여성의 창] 강정은 l 언덕위의 바람개비

2011-05-30 (월) 12: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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샌디에고에서 동생가족이 왔다. 어린아기 둘을 데리고 오기가 너무 힘들어 미루고미루다 정말 큰 맘먹고 왔다. 그렇게 놀러오라고 해도 꿈쩍도 안하더니… 돌아가신 아버지 기일이 다가왔기 때문이다.

우리 아이들은 사촌아기들 볼 날을 손꼽아 기다렸다. 마치 아빠가 주말에 골프나 축구 갈 날만 손꼽아 세는 것처럼 어찌나 정성스럽게 오는 날을 꼽던지 그만 좀 하라고 한 소리 했다.

오랜만에 많은 식구가 복작복작 아기 울음소리도 나니 정신은 없었지만 활기가 가득했다. 가족끼리 뭔가 를 해야만 할 것 같은 들뜬 분위기가 들었지만 꾸욱 참고 일단 아버지 묘지를 찾아가기로 했다.

늘상 가던 길이지만 오랜만이다. 가는 차안에서의 동생과의 대화는 이런저런 각자의 생활사에서 시작되었다. 하지만 그 늘상 가던 익숙한 길을 가는 동안 우리의 대화는 우리 둘만의 공통점으로 향하고 있었다. 옛날에 언니가 나한테 이랬다느니, 너도 나한테 저랬다는니 하다가, 당연히 엄마아빠가 들어오게되고... 그러다 빈자리의 주인공인 아빠로 화제는 점점 돌아갔다.


이 세상에 안계신다고 그동안 아빠 얘기를 안하고 살았다. 그리울 때 잠깐잠깐 생각이 나면 기분이 다운되서 생각을 오래 안 하려하는 습관이 들어서 그런가 보다. 우리집 막내의 광팬이셨던 외할아버지가 이제는 그 막내에게도 점점 가물한 기억의 한 분으로 멀어지고 있다.

그렇게 동생과 수다를 떨다 묘지에 도착했다. 경치를 좋아하셨던 아버지라 묘자리도 바다가 보이는 언덕 위다. 오랜만에 맘에들게 포장된 꽃을 들고 묘지 앞에 섰다. 예전처럼 눈이 뜨거워 지지 않았다. 푸근했다.

따뜻한 날씨와 적당히 자란 풀밭과 여기저기 꽂혀있는 화사한 꽃들과 멀리 보이는 파란 바다와 시원한 바람, 그리고 엄마가 잘 정리 해 놓으신 아빠 묘지. 아빠가 바람개비를 좋아하신다고 비석 양쪽에는 예쁜 두 바람개비가 바닷바람에 바쁘게 열심히 돌고 있었다. 이 모든 것들이 아빠의 냄새 같았다. 우리는 그 주위에 앉아 이야기를 계속 했다. 그동안 잊고 살았던 아빠의 냄새를 우리 모두 만끽하고 있었다. 서운했던거 미워했던거 많았다. 하지만 푸근하게 아빠의 품이 햇빛에서 바람에서 풀밭에서 화사한 꽃에서 그리고 몸을 흔들며 열심히 돌고 있는 바람개비에서 느껴짐에 행복했다. 그리고 그리웠다. 그렇게 바람개비처럼 사시다 가신 분.

(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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