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여성의 창] 강영혜 ㅣ고백

2011-05-27 (금) 12: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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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만인가요?”
“글쎄요. 아마도 15년은 된 거 같아요.”
“제 딸이예요. 늦둥이지요. 지금은 글쎄 이 애가 없었음 어쨌을까하며 키우는 재미에 살지요.”

우연히 만난 B 여사가 자신의 아리따운 막내딸의 긴 머리를 매만지며 이야기한다. 어찌 살았나 물어볼 겨를도 없이 막내딸 자랑부터 자기 가족 살아온 얘기, 극심한 고생 후 남편과 기반 잡은 이야기를 하더니 갑자기 화제를 바꾸어 이 기회에 내게 꼭 할 말이 있단다.

그러더니 B 여사는 불쑥 내게 먼저 미안하다고 했다.
"실은 제가 강 여사님을 많이 경계했었어요. 왜냐면 한국에서 미국 올 때 하루 종일 소양교육을 받았는데 제일 강조한 것이 사람조심이었거든요. 조건 없는 친절을 베푸는 사람은 반드시 의심해야하며 이북에서 보낸 간첩이라고 했지요."


그래서 그동안 내가 도와준 정성도 혹시나 하는 마음에 은근히 조심하며 살았단다. 그런데 그게 오해였기에 두고두고 마음에 걸려 사과하고 싶었다고…. 맙소사! 나는 선 채로 그녀의 고백을 고스란히 듣고는 어안이 벙벙해졌다. 그녀와의 인연은 이러했다.

25년 전 애들 유아원에서 만난 한국 아이 엄마가 미국 생활에 아직 낯서니 베이비시터를 구해달라고 내게 간절히 부탁했다. 일간신문 구인 광고를 보고 어렵게 수소문하여 사람을 소개시켜 주었다. 그런 나를 보고 제 삼자가 열심히 남의 집 아이를 위해 노력하는 것부터 수상했으나 그래도 생활이 워낙 궁핍하여 거절을 안 하였단다.

어찌 그 뿐이랴! 한국에서 교직에 있었던 그녀는 맘먹고 배워온 미용 솜씨로 자기 집에서 사람들의 머리 손질도 하고 있었다. 그의 솜씨는 아직 서툴었지만 도와주고 싶은 마음에 내가 아는 모든 지인들에게 소개하려고 먼저 나의 머리부터 맡겼다. 그 당시 비슷한 모습의 철모를 쓴 듯한 파마머리의 여인들은 모두가 그녀의 손님이었다. 내 소개로 머리를 한 지인들이 맘에 안들어 하면 그게 최신 유행이라며 설명하기 바빴건만….

남편 유학 시절인지라 애들 키우며 살림하고, 밤엔 웨이트리스로, 아침엔 미용일하며, 오후엔 애 돌보기까지 하던 그녀. 이른 새벽엔 줄서서 정부의 긴급식량을 타온다는 그녀의 말이 너무도 안쓰러워 장이라도 보면 주섬주섬 그 집에 갖다 주곤 했는데…. 내가 배려한 정성과 친절을 그녀는 고작 이북에서 파견된 간첩으로 생각했다니 속이 상했다.

"끝까지 혼자나 생각하고 말일이지 왜 내게 이제 얘기했을까? 차라리 그런 사과라면 안 하는 게 낫지 않을까?" 사과를 받고도 전혀 유쾌하지 않고 기분이 씁쓸했다. 사람과의 대화에서 솔직함은 중요하지만 남을 배려하는 게 우선이란 생각이 드는 하루였다.

(아여모 북가주 지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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