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이종혁 칼럼] 옷차림

2011-05-24 (화) 12: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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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명한 여류 소설가 “대니얼 스틸”이 얼마 전 신문 인터뷰에서 한 말이 생각난다. 샌프란시스코는 아이들 기르기는 좋은 곳일지 모르지만 이제 떠나야 될 곳이라고 했다. 그가 옛날에 알던 도시와는 달리 지금은 멋도 잃어버린 보잘것 없는 곳으로 변했다는 혹평이다. 이제 정장한 사람은 보기도 힘들고 멋쟁이들은 간 곳 없고 모두 촌사람같다는 이야기다. 예전의 멋을 상실한 금융 중심가는 반바지에 부츠차림이 마치 캠핑 가는 떼거리 같다고 한다. 이제는 사람들이 자기 차림에 신경을 쓰지 않는다고 한다. 이작가의 이야기 한마디 한마디가 틀린 게 없다.

인터넷이 모든 사람의 생각이며 일하는 방법 그리고 옷차림의 일대 변화를 가져왔다. IT 회사들은 직원들의 편의를 도모한다고 금요일을 ‘Dress Down Day’라며 편한 옷을 입게 했는데 이제는 매일이 ‘Dress Down Day’가 됐다고 걱정들을 한다. 내가 학교를 마치고 사회생활을 처음 시작한 70년 초만 하여도 정장차림을 하지 않으면 금융가에 나갈 엄두를 못 냈다. 더구나 날씨가 항상 쌀쌀 하여 치장하기에 적절해 옷 잘입은 멋쟁이 들이 많았다. 고급식당에 넥타이를 매지 않고 가면 자리에 앉혀주지도 않았는데 얼마 전 친지가 144년 되는 “샘스 그릴” 식당에 가니 이제는 그곳도 정장 차림이 몇 명 없었다고 한다.

한국에서 몇 년간 직장 생활을 하다가 이곳에 정착한지 몇 십 년이 지났다. 내 사무실을 개업 하며 항상 생각 한 것이 ‘고객을 위해서라도 옷을 잘 입어야 된다’ 였다. 정장 차림에 하루의 일과를 시작하면 그렇게 기분이 좋을 수가 없었다. 집을 나가기 전에 옷에 맞는 셔츠에 넥타이와 양말, 벨트와 구두에 좀 시간이 걸리기는 하지만 준비하는 과정이 주는 즐거움도 만끽했다. 준비하는 과정에서 회계사들이 즐기는 짙은 색 넥타이를 제쳐놓고 노란색이나 라벤더색 등을 매고 나가면 주위에서 칭찬도 받았고 직장 상관들의 따가운 눈총도 받았다. 대단한 색깔을 남자가 용감하게 선택했다지만 어쩌면 뒤에서 욕을 했는지 모르겠다. 금융가 근처에 있는 양복점도 잘 알아 적지 않게 옷에 투자하기도 했다. 이렇게 모두 멋을 부리던 때 샌프란시스코 다운타운의 멋쟁이 여자들은 모자에 장갑을 낀 정겨운 모습도 보였다.


잘 차려 입은 백인 고객들이 내가 사무실을 오클랜드로 옮기니 거래를 끊었다. 1960년대 말 1970년대 오클랜드도 정장 한 남자, 여자들이 캡웰 백화점이나 매그닌등을 이용 하며 멋을 부렸는데 그래도 샌프란시스코같지는 못했다. 브로드웨이등 다운타운 에 일 하는 사람들은 거의 정장차림이 이었다. 이제는 모두 차림이 마치 운동경기나 산행을 하는 사람들 같다. 더구나 오클랜드는 한동안 불루칼라 도시로 알려져서인지 사람들의 이목을 크게 생각지는 않았던 모양이다. 지금의 정장차림은 일요일에 우리 동포 교회에 가면 볼 수 있는데 백인 교회는 역시 캐주얼 차림이다. 어떤 사람들은 마치 파자마 같은 옷을 입고 예배에 참석하지만 주위에서 쑤군대지 않는다. 오랫동안 교회에서 자란 나는 이런 백인 교회 옷차림이 못마땅하게 생각될 때도 있었는데 자주 보니 이제는 그런가 보다 한다. 이는 우리 생각이고 아마 백인들은 옷에 구애받지 않는 편한 예배의식이 좋은가 보다. 한 번은 샌프란시스코 오페라 시즌 첫날 공연에 모두 턱시도에 보우 타이 차림이었는데 한 백인이 리바이스 진에 T셔츠 차림이여서 관객들의 시선을 집중케 하기도 했다.

이 여류 소설가의 인터뷰를 생각하며 일주일에 며칠만이라도 넥타이를 맨 정장을 해야겠다고 다짐도 한다. 지난 몇 십 년 동안 장만한 넥타이가 퍽 많은데 그래도 구색을 맞추어 보니 지금도 쓸 만한 것이 제법 있다. 오래된 옷을 입으니 좀 어색하기도 하지만 좋은 양복점에서 산 옷은 지금도 괜찮다. 세월이 지나며 나이가 드니 옷이 몸과 따로 돌기도 하지만 그래도 정장 하는 맛이 제법이다. 몇 십 년 전처럼 출근 할 때 구색을 갖추는 재미도 쏠쏠하다. 역시 옷은 깨끗이 입어야겠다는 생각이 근래에 자주 든다. 아마 나이가 드는 징조 인가 보다.

(경영학 박사/CP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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