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의 창] 문선희 ㅣ 내 친구 윤혜란
2011-05-24 (화) 12:00:00
내 친구 윤혜란은 나와 대학 동창이다. 짧은 커트 머리에 화장기 없는 얼굴, 동그란 테 안경을 쓴 이 친구는 보이는 모습대로 성격이 서글서글하니 좋았고, 말도 재미있게 잘해서 함께 대화하는 사람들을 즐겁게 해주는 매력이 있었다. 젊은이들이 짊어져야 할 고민이 너무나 컸던 그 시절, 부담감 속에서 주눅들어 있었던 나는 엉뚱하게도 이 친구와 이야기를 하면 왠지 내 삶이 인정받을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한 적이 있었다.
그 친구가 2005년 막사이사이 상(Magsaysay Prize) 중 ‘떠오르는 지도자’ 상을 받았다. 필리핀의 대통령이었던 막사이사이의 공적을 추모하고자 제정된 이 상은 국적, 인종, 종교을 막론하고 아시아인들을 위해 훌륭한 일을 한 사람에게 주어지는 상이다. 혜란이는 졸업 후 고향인 천안으로 내려가 시민 운동을 했고, 그 공로를 인정받아 아시아의 노벨상이라 불리는 이 큰 상을 받게 된 것이었다.
일년 전 혜란이에게서 연락이 왔다. 가족과 함께 안식년 겸해서 미국으로 유학을 오게 되었다고, 그리고 북가주를 방문하는 동안 나를 꼭 만나고 싶다고. ‘멀리서 친구가 찾아오니 어찌 기쁘지 않겠는가?’ 졸업 후 처음 본 혜란의 얼굴은 많이 상해 있었다. 본인 말로도 휴식이 좀 필요해서 떠나왔노라 했다. 하지만 그날 밤 있는 힘껏 내 이야기를 물어봐주고, 격려해주고, 다그치는 혜란이는 오로지 나를 위로하려는 사명을 띠고 이곳을 방문한 것 같았다. 그리고 자신이 감당해야 하는 일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혜란이에게서 나는 깊은 가르침을 받았다.
지난달 이 친구가 다시 이곳에 왔었다. 포틀랜드에서 12시간을 혼자 운전해서 오느라고 지쳐 있었겠고, 다른 볼 일 때문에 시간도 거의 없었지만 혜란이는 휴식을 마다하고 나를 앞세워 한 장애인 선교 봉사 단체를 방문했다. 십 여년 동안 살면서 한번도 방문해 본적이 없었던 그곳을 나는 혜란이의 손에 이끌려 다녀왔고, 혜란이는 그렇게 나에게 한 인연을 더해주고 떠났다. 혜란이가 무사히 여행을 마치기를 기도하며 나는 그애의 차를 더 이상 볼 수 없을 때까지 길가에 서 있었었다.
(번역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