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김 희봉 칼럼] 5월의 꿈

2011-05-17 (화) 12: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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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은/ 집대문 활짝 열고/ 희망이 햇빛처럼 쏟아져 들어오는 달/
5월은/ 하세월 지나도/ 여전히 싱그러운 당신의 꿈”

좋은 소식이 올 것 같던 5월 아침에 책배달이 왔다. “농촌마을 CEO”란 제목의 신간이다. 처조카 정기가 은퇴후 전북 진안 산골에서 지난 3년간 마을 간사로 일한 “앙코르 인생 체험기”를 엮은 책이다. 책표지에 이순(耳順) 나이에도 여전히 건장한 그가 마을 앞에서 장화를 신고 환히 웃고섰다.

조카는 동란때 태어난 나와 동갑내기다. 그런데 20대 결혼초 부터 나만 보면 항상 웃는 낯에 이모부라고 정겹게 대해주던 예절바른 청년이었다. 그는 우리가 미국오던 해, 아모레로 유명한 태평양 화학에 입사했는데 근 30년후 상무이사로 퇴직하기까지 회사의 큰 기둥으로 일했다.


타고난 성실함과 뛰어난 두뇌, 그리고 원만한 대인관게로 그는 젊은 나이에 회사의 중추 웰빙사업인 설록차 사업본부장으로 발탁되었다. 농사에는 전혀 문외한이던 그가 그후 전남의 강진과 해남, 제주의 서귀포, 남제주군에 100만 평이 넘는 녹차밭을 조성, 한국의 대표적 기업농을 세우고, 전통차문화의 붐을 일으킨 장본인이 된 것이다.

그러나 30년 직장생활 동안 한번도 휴가를 가본 적이 없을 만큼 평생을 바친 일터에서 명퇴를 당한 후 그는 오래 후유증에 시달렸다고 한다. 최고 경영자 승진을 눈앞에 두고 그동안 쌓아온 경험과 노하우, 열정으로 온몸을 팽팽하게 당기고 있었는데, 그 줄이 일시에 끊어져버린 충격을 추스리는 일은 정말 힘들었다고 술회하고 있다.

그러던 그가 우연히 신문에 난 ‘농촌마을 간사’ 모집기사를 본 것이다. 무주, 진안, 장수를 합쳐 무진장이란 산골오지의 대명사가 된 그 곳으로 마을머슴이 되겠다고 자원한 것이다. 월급 100만원에 거처도 정해지지 않은 상태였다. 그런데 그의 마음속에 확실한 것은 그곳에 가면 그가 젊음을 바쳐 100만평 설록차 농장을 경영한 경험이 우리 농촌에 요긴하게 쓰일 수 있을 것이란 믿음이었다고 한다.

역시 그가 막상 가 본 농촌은 인재난이 심각했다고 한다. 좁은 땅에서 난 작물은 가격에서 수입농산물에 밀리는 데다, 새로운 기술에 도전하는 젊은이들, 정부지원 사업을 효율적으로 집행할 수 있는 전문인들이 턱없이 부족하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시간이 지날수록, 우리 농촌을 위해 자기를 지난 30년동안 큰 돈주고 하나님이 훈련시킨 것이 감사하다고 했다.

그런데 책을 읽으며 감동한 것은 그가 간사생활 동안 자신의 경력이나 나이를 내세우지않고 바닥에서 마을 이장과 부녀회장들의 심부름꾼이 되어 그들의 신뢰를 쌓아간 점이다. 농부들의 마음을 사고 신뢰를 쌓은 일에 바친 하루하루 일과가 눈물겹기까지 하다.

지금은 전국에서 응모한 100여편의 농촌발전 계획안 중 그의 안이 발탁돼 “전북동부권 고추연합사업단장”으로 선출되었다. 년간 200억원 농림부 핵심 사업으로 진안, 임실군의 23개 고추 재배농들을 묶은 브렌드 육성사업의 CEO가 된 것이다.

그가 제 2의 인생을 살며 꾸는 꿈은 평생 쌓아은 노하우를 농촌에 되돌려주는 것이라고 했다. 두메 산골 고추를 세계적 명품으로 만들려는 그의 꿈은 어떤 젊음 보다 푸르고 싱그럽다.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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