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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칼럼/ 진도 나가기와 음악 고르기

2011-03-28 (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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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오나 김 뉴욕음악원 원장

악기 레슨에 있어서 부모들이 가장 많이 신경 쓰는 부분의 하나가 바로 진도가 아닌가 싶다. 내 아이가 무엇을 어떻게 배우고 있는지 보다 때로는 더 많은 관심을 보이며 신경을 곤두세우는 부분이 바로 이 진도에 관한 것이다. 대부분의 부모들은 진도가 빨리 나가주길 원하며 비슷한 또래의 다른 아이에 비해 내 아이가 훨씬 앞서 나가길 원한다. 아이가 어릴수록 이런 현상은 더욱 빈번히 나타나며 이제 막 음악 레슨에 입문한 초보자도 이러한 진도 경쟁의 경우를 종종 볼 수 있다. 그렇다면 진도는 어떻게 나가는 것이 좋을까?

진도는 양(Quantity)보다는 질(Quality)이다. 이번 칼럼에서 말하는 진도란 각 단계별로 반드시 해주고 지나가야 하는 기본 교재들을 지칭한다. 전공을 해서 음악가의 길로 나갈 것이 아니라면 음악이 좋아서 취미로 하는 사람들에게 그 진도라는 것은 그렇게 큰 부담으로 다가올 필요가 없다. 물론 진도가 빨리 나간다면 기본적으로 해야 할 것들을 좀 더 빨리 끝냄으로써 곡 선정에 있어
더 많은 자유를 얻을 수는 있다. 하지만 이것은 어디까지나 열심히 차근차근 연습해서 각 단계별 과제를 착실히 수행했을 때의 얘기다.


그렇지 않고 그 단계에서 완전히 익히고 지나가야 할 것을 철저히 하지 않은 채 어설픈 상태로 진도를 나간다는 것은 그것이 전공자이건 비전공자이건 간에 무의미한 시간 낭비일 뿐이고 결국 제일 피곤하고 힘들어지는 것은 고스란히 학생들의 몫이 된다. 해결되지 않은 문제점들을 계속 끌어안고 간다면 그 다음 단계에서는 더욱더 고전을 면치 못할 것이기 때문이다. 체르니 한 권을 5년을 치건 10년을 치건 해야 할 것은 하고 지나가야 그 다음 단계를 좀 더 가뿐히 수월하게 이행할 수 있다. 물론 책 한 권을 너무 장기간 끌고 가는 것도 학생과 선생이 같이 해결해야 할 문제다. 대화를 통해 학생의 문제점을 파악하고 조금 더 진도에 박차를 가할 필요는 있다.

간혹 시간이 문제점들을 해결해 줄 것으로 믿는 학생들도 있다. 시간만 지나면 자신도 어느 수준만큼 도달할 수 있을 것이고 시간만 지나면 잘 되지 않던 어려운 기술들도 저절로 될 것이란 믿음이다. 나에게도 동의를 구하는 그 학생들에게 난 항상 흔쾌히 동의를 해준다. 단, ‘성실한 자세로 꾸준히 연습을 한다면’이란 전제를 꼭 덧붙인다. 무조건적인 시간의 흐름은 아무것도 해결해 주지 않는다. 시간이 흐른다고 잘 되지 않던 테크닉이나 음악성이 저절로 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그것은 시간이 해결해 주는 것이 아니라 철저히 학생 본인들의 노력과 공들인 시간만이 보상해주는 열매인 것이다. 시간과 성실한 노력이 같이 병행될 때 ‘앞으로 시간이 어느 정도 흐르면’이란 말이 성립될 수 있는 것이지 노력이 따르지 않는 무조건적인 시간 흐름의 마술은 없는 것이다.

음악은 즐거워야 한다. 아마추어에게 음악은 취미 활동이자 고단한 삶을 살아나가는데 있어 스트레스 분출구여야지 스트레스의 주범이 되어서는 안 된다. 그런 의미에서 모든 사람들에게 무조건적인 클래식 음악의 강요는 무의미하다. 어느 정도 기본기를 익히고 테크닉을 연마할 때까지는 마쳐야 할 기본 교재들과 일정량의 클래식 곡들을 통해 음악을 알아나가야 하는 면도 있지만 그 과정도 어차피 다 본인이 원하는 음악을 하기 위한 더 큰 과정의 일부분일 뿐이다. 필자의 경우 기본을 익혀나가는 과정에 있어서 학생들이 내가 원하는 것을 잘 따라오면 나도 그 보상으로 학생들이 원하는 것을 하게 해준다. 교재와 더불어 내가 내주는 기본적인 필요의 곡들을 해오면 그 다음 나머지 반시간은 철저히 학생들이 하고 싶어 하는 음악을 하게 해줌으로써 음악 배우기의 진정한 의미를 깨우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그것이 가요건 힙합이건 영화음악이건 게임 음악이건 그건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것은 어떤 음악이건 간에 그것을 치고 싶거나 배우고 싶어 하는 것이 목표인 학생 자신이 그 목표에 빨리 다가갈 수 있도록 도와준다는 것이다. 진도는 차근차근히, 단, 음악은 다양하게 많은 곡들을 쳐보도록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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