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체스터(왼쪽·마이클 화스벤더)와 제인(미아 와시코브스카)은 운명적 사랑의 두 주인공이다.
★★★ (5개 만점)
처음 만난 그 순간… 아, 운명적 사랑
클래식 로맨스, 절제 품격있는 연출
19세기 영국의 유명한 자매작가 중 한 명인 샬롯 브론테(그의 자매 에밀리는 역시 분위기 음산한 로맨스 소설 ‘폭풍의 언덕’의 작가)가 쓴 운명적이요 로맨틱하며 무드 짙은 사랑의 이야기가 원작으로 차갑도록 냉정하고 엄격하며 또 품격을 갖춘 작품이다.
촬영과 연기와 음악과 디자인 그리고 의상 및 거친 자연풍경 등 모든 것이 잘 조화를 이룬 젊은 세대에게 새롭게 제인 에어를 소개해 주는 젊고 신선한 작품인데 문제는 원작의 짙고 운명적이요 또 강렬한 감정적 충격이 부족하다는 점이다.
‘제인 에어’는 읽고 보는 사람을 지상에서 하늘로 날아다주는 황홀 무아지경의 로맨틱한 작품인데 케리 조지 후쿠나가 감독(‘2009년작 중미 이민자들의 얘기 ‘신 놈브레’)은 모든 것을 철저히 통제하고 냉철하게 다뤄 감정적으로나 심리적으로 보는 사람에게 거리감을 느끼게 만들고 있다.
이런 해석은 두 주인공이 모두 자신들의 감정을 인지하지 못할 정도로 자아에 대한 통제를 가하는 사람들이어서 옳은 연출일지는 모르겠으나 격류 같은 감정의 혼란 속에서 쾌감과 자기정화를 느끼고자 하는 관객에겐 다소 실망스런 것이다.
소설 ‘제인 에어’는 그 동안 영화와 TV 드라마로 여러 번 만들어졌는데 그 중에서도 가장 유명한 것은 오손 웰스와 조운 폰테인이 주연한 1944년작 흑백영화로 과다할 정도로 로맨틱하다. DVD로 나왔으니 보시기를 적극 권한다.
영화는 제인(미아 와시코브스카)이 가정교사로 있던 로체스터(마이클 화스벤더)의 거대한 저택 손필드 홀로부터 축축한 날씨 속에 히스가 무성한 들판으로 도주하는 장면으로 시작된다. 이어 제인은 두 여동생과 함께 사는 젊고 친절한 선교사 세인트 존(제이미 벨)의 집에 묵는다.
그리고 제인의 과거가 회상된다. 고아로서 모질고 엄격한 이모(샐리 호킨스) 밑에서 사는 제인은 줏대가 강하고 총명하며 생명력이 넘치는 소녀. 아주머니는 이런 제인이 못 마땅해 교구의 고아원으로 내쫓는다.
여기서 제인은 체벌을 혹독하게 가하는 교육과 대접을 받으면서도 강한 독립심을 지키면서 훌륭하게 성장, 많은 지식을 갖춰 로체스터의 어린 딸의 가정교사로 고용된다. 그런데 제인은 결코 아름다운 미모의 소유자가 아니다. 로체스터도 미남이 아니긴 마찬가지(그런데 화스벤더는 너무 미남이다.)
거대한 손필드 홀에서 제인을 맞는 사람이 나이 먹고 인자한 집안 총관리인인 페어팩스 부인(주디 덴치). 엄청나게 큰 손필드 홀은 작품에서 마치 하나의 사람과 같은 역할을 한다고 해도 되겠는데 음산하고 음침하고 귀신 나올 것처럼 냉기가 감돌고 또 으스스하다. 이런 분위기는 집에 머무는 날이 별로 없는 마치 음지의 사람인양 침울한 모습과 성격을 지닌 로체스터의 그 것과 마찬가지다.
제인과 로체스터의 첫 만남은 숲에서 갑자기 튀어나온 제인을 피하느라 말을 타고 달리던 로체스터가 급정지를 하면서 말에서 떨어지면서 이뤄진다. 가슴 속 깊이 로맨틱한 감정을 묻어놓은 고독하고 감정적 통제를 하는 제인과 로체스터는 처음부터 서로를 마치 적처럼 대하나 둘은 서로가 반드시 필요하고 또 갈라놓은 반쪽과도 같은 존재들.
결국 둘 간의 감정이 서서히 뜨거워지는데 그렇게 되기까지는 고통 받는 영혼의 소유자인 로체스터의 베일에 싸인 정체와 비밀 그리고 손필드 홀의 보이지는 않으나 불길하고 위협적인 어떤 존재 등 여러 가지 우여곡절이 둘의 사랑의 장애가 된다.
창백하고 거의 초라한 모습의 와시코브스카의 옥죄는 듯한 절제된 연기가 좋은데 화스벤더 역시 변화무쌍한 연기를 한다. 조그만 더 생명력과 정열을 뜨겁게 달궜더라면 하는 아쉬움은 있지만 클래식 로맨스 영화팬들에게 적극 권한다. PG-13. Focus. 아크라이트(323-464-4226), 랜드마크(310-281-823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