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노만석·구자현과 같은 연수원 29기…검사 징계·’평검사 강등’ 반발 해석도
▶ 연수원 30∼31기 중 퇴진자·32∼33기 신참 검사장 동참자 여부가 관건 전망

박재억 수원지검장(외쪽)과 송강 광주고검장 [연합뉴스 자료사진]
검찰의 대장동 개발 비리사건 항소 포기와 관련해 검찰총장 직무대행에게 상세 설명을 요구한 박재억(사법연수원 29기) 수원지검장이 17일 사의를 표명했다.
법무부가 항소 포기에 반발한 검사장 전원을 평검사로 인사 조처하는 방안을 검토한다는 사실이 알려진 지 하루 만이다.
검사장 집단 성명의 연판장에 이름을 올린 송강(29기) 광주고검장도 이날 사의를 표한 것으로 알려지면서 검찰 고위 간부들의 추가 퇴진 가능성이 거론된다. 다만 이날 사의를 밝힌 고위 간부들은 신임 구자현 검찰총장 대행(대검찰청 차장검사)과 연수원 동기들이다. 앞서 퇴진한 노만석 전 대행과도 동기다.
박 검사장은 지검장 중에서 가장 고참이며 송 고검장은 고검장급 3명 가운데 한 명이다. 박 지검장은 이번 항소 포기 사태 이후 상대적으로 목소리를 내면서 주목받아왔고 송 고검장의 경우 지난 윤석열 정권 당시 업무처리를 놓고 국정감사장에서 민주당 의원들의 공세를 받은 바 있다.
따라서 향후 '줄사퇴'로 이어질지 여부는 고검장 및 검사장급이 포진해있고, 일선 지검장 주축 기수인 30∼31기 중에서 퇴진자 여부, 직전에 검사장으로 승진한 32∼33기 중에 얼마나 동참자가 있을 것인지 여부가 결정할 것으로 전망된다. 30기에는 이종혁 부산고검장, 임은정 서울동부지검장, 김태훈 서울남부지검장을 비롯해 일선 지검장과 법무연수원 연구위원 등이 있다.
17일 연합뉴스 취재를 종합하면 박 지검장은 이날 법무부 등에 사의를 표명했다.
지난 10일 박 지검장을 포함한 검사장 18명 명의의 '검찰총장 권한대행께 추가 설명을 요청드린다'는 제목의 입장문이 검찰 내부망 이프로스에 올라온 지 한 주 만이다.
당시 검사장들은 입장문을 통해 "대장동 개발 비리 의혹 사건의 1심 일부 무죄 판결에 대한 검찰총장 권한대행의 항소 포기 지시를 두고 검찰 내부뿐 아니라 온 나라가 큰 논란에 휩싸였다"고 지적했다.
이어 "검찰총장 대행이 밝힌 입장은 항소 포기의 구체적인 경위와 법리적 이유가 전혀 포함돼 있지 않아 납득이 되지 않는다"며 당시 노만석 대행의 추가 설명을 요구했다.
'대장동 항소 포기'가 논란이 되자 노 전 대행은 "서울중앙지검의 항소 의견을 보고받고 법무부의 의견도 참고한 뒤 해당 판결의 취지 및 내용, 항소 기준, 사건의 경과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항소를 제기하지 않는 것이 타당하다고 판단했다"는 취지의 입장문을 낸 바 있다.
검찰 내 대표적인 '강력통'인 박 지검장의 전격적인 사의 표명으로 이날 예정된 마약범죄 합동수사본부 출범도 연기된 것으로 알려졌다.
이날 송강 고검장 역시 법무부에 사의를 표명한 것으로 파악됐다.
송 고검장은 대장동 항소 포기 사태 이후 검찰 내부망에 명시적으로 입장을 내놓진 않았지만, 항소 포기 경위를 제대로 설명해야 한다는 취지의 의견을 노 전 대행에 전달한 것으로 전해졌다.
박 지검장과 송 고검장, 노 전 대행은 모두 연수원 29기 동기로 현재 검찰의 최고참 간부다. 노 전 대행 사직 이후 '원포인트' 인사로 검찰총장 대행 역할을 맡게 된 구자현 대검차장과도 동기다.
대장동 항소 포기 사태 이후 검사장들의 이례적인 집단 입장 표명의 파문이 정치권으로 번지는 등 논란이 계속되자 숙고 끝에 사직을 결정한 것으로 풀이된다.
검찰 안팎에서는 정부와 여당이 성명을 낸 검사들에 대한 징계 및 '평검사 강등'을 검토하는 것에 대한 반발 차원이라는 해석도 나온다.
더불어민주당은 대장동 사건 항소 포기에 대한 검찰 일각의 반발을 "집단 항명"으로 규정하며 법무부 장관에게 이들을 징계할 것을 요구해왔다.
이에 법무부도 입장문에 이름을 올린 검사장 18명 전원에 대해 평검사로 전보 조처하는 방안을 검토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일각에서는 후배 간부들도 그 뒤를 따르며 '검찰 지휘부 줄사퇴'가 현실화할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다만 실제 사례들이 속출할지 여부는 속단하기 어려워 향후 며칠이 고비가 될 전망이다.
이와 별개로, 상명하복 문화가 뚜렷한 검찰 조직 특성상 연수원 기수가 낮은 인물이 총장 등 수장으로 임명되면 지휘 부담을 덜어주는 차원에서 선배와 동기 기수가 옷을 벗는 관례가 있다.
이런 점에서 통상적으로 동기가 수장에 오를 경우 퇴진하는 사례들은 있어왔다.
다만 조직 안정 등 여러 차원에서 동기들이 일정 기간 자리를 지키는 상황 역시 꽤 있었다. 과거 법무부 장관 수사지휘권 발동에 반발해 사직했던 김종빈 전 총장 이후 정상명(7기) 총장이 수장이 된 뒤에도 정 총장의 요청에 따라 연수원 동기들이 일정 기간 자리에 있으면서 '집단 지도 체제' 형태로 힘을 실어준 바 있다.
하지만 현재 상황은 검찰청이 폐지 수순에 들어간 데 이어 항소 포기 사태에 일선 검사장 징계성 강등까지 거론되는 등 악재가 겹치면서 그나마 조직에 남아 자리를 지켜왔던 고참급 고위 간부들이 어떤 역할을 하기도 어려운 상황이다. 앞서 노 전 대행 체제에선 총장이 임명되지 않은 상태여서 대검 차장과 동기인 고검장급과 고참 지검장들이 함께 있었던 구도였지만, 거센 풍파까지 몰아치면서 29기의 경우 선택지가 거의 없어진 셈이다. 연수원 31기 이하 고위 간부들의 움직임이 사태 확산의 관건이 될 전망이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