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나는 北동포 위한 사랑주의자”

2011-02-01 (화) 12: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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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에서 한국 교수를 안받는다구요? 오해입니다. 언제든 환영합니다. 다른 이유가 있어서 못 들어가고 있을 뿐입니다. 가겠다는 사람도 30여명이나 있었는데 말입니다.”
평양과학기술대학(Pyongyang University of Science & Technology)’ 총장 김진경 박사는 못내 아쉬운 표정이었다. 평양과기대가 개교한 때는 2009년 9월16일. 남북 관계가 긴장되면서 교수들이 입국을 못하고 있었다. 일 년을 기다렸지만 작년에는 천안함 폭침 사태 등이 일어나면서 나아질 기미가 전혀 없었다. 더 이상 미룰 수 없어 작년 7월부터 학생들을 등록받고 9월에 수업을 시작했다. 교수진은 미국과 유럽 등 5개국에서 온 인력으로 채워졌다.
김 박사는 “다른 나라에서 온 교수들이 가르치는 최초의 북한 내 대학”이라고 평양과기대 개교의 역사적인 의미를 설명했다. 국제사회의 평가도 좋다는 게 김 박사의 말. 60년을 국제사회와 등지고 살았던 나라에 처음 있는 일이기 때문에 북한이 오히려 크게 우려했었다. 김 박사는 “첫 학기를 끝내고 북한 관리들이 ‘성공적’이란 말을 썼다”며 “함께 할 수 없는 나라라는 인식을 줘왔던 북한에 대한 생각을 바꿀 수 있는 엄청난 사건”이라고도 덧붙였다. 지난 학기에 가르쳤던 했던 교수들은 이번 학기에도 전부 다시 들어갈 계획임을 밝혔고 새로 자원한 교수들이 더 있다는 사실이 평양과기대가 순항하고 있음을 증명하는 것이라는 주장이다.
“정치적인 것은 언급하지 않겠습니다. 한국 정부를 비난할 생각도 전혀 없습니다. 대북 자세가 강경할 필요도 있습니다. 하지만 같은 민족에게 인도적 지원을 하는 것은 다른 문제입니다. 저는 항상 ‘예수라면 어떻게 할 것인가(What would Jesus do?)를 생각합니다. 신앙인은 생각이 달라야 합니다. 전세계가 거부하는 외톨이 나라의 백성을 살리는 일에 어떤 조건을 달아서는 안 됩니다.”
6.25 발발 당시 15살의 나이에 학도병으로 끌려간 소년. 최연소 군번이었다. 당시 함께 소집된 800명 가운데 살아남은 17명 중 한 사람이다. 살고 싶어 하나님께 기도했었다. “살려주면 뭐 할테냐?”고 하나님은 물으셨다. 너무나 비참해 보였던 북한 사람과 중국 사람들을 위해 일하겠다고 약속했다. 연변과기대와 평양과기대 설립은 그 약속을 지킨 것 뿐이다.
김 박사는 북한에서도 또 한 번 죽음과 대면한 적이 있다. 사형 선고를 받았다. 체제 전복 기도죄. “왜 수령님의 자식들을 예수의 자식으로 만드느냐”는 이유였다. 1998년의 일이다. 유서에 “절대 북한 사람을 탓하지 말라, 내 몸을 의과대학 실험실에 주라”고 썼다. 그 때의 위기는 오히려 김 박사를 북한 당국이 철저히 신뢰하는 계기가 됐다.
하지만 그는 자신이 자본주의자도, 공산주의자도 아닌 ‘사랑주의자’라고 생각하고 있다. 다른 부끄러운 의도가 없기 때문에 북한 당국자들을 만날 때도 당당하게 신분과 의도를 밝히고 일했다
“연변과기대를 통해 중국 사람들을 열심히 섬겼더니 ‘당신이 믿는 하나님 우리도 존경한다’고 하더군요. 생각을 바꾸려고 하지말고 감동을 줘야 합니다. 미국 동포들은 많은 은혜를 받은 사람들입니다. 불행한 북녘 동포들은 미주 한인들이 도와야 합니다. 우리의 삶이 의미 있고 값진 것이었다는 것을 증명하는 길은 그것입니다. 북한 땅에는 아직 예수가 부활하지 못하셨습니다. 여러분 모두를 초청합니다. 와서 보십시오.”
‘외부세계로 통하는 창을 열어주고 포스트 김정일 시대를 이끌어 나갈 기술 관료 양성‘을 목표로 하는 평양과기대 재학생은 박사 과정에 60명, 석사 과정에 100명. 최고의 엘리트만 모아 놓았다. 모든 수업은 영어로 진행된다. 평양과기대는 후원자는 물론 교수로 직접 참여할 미주 동포를 기다리고 있다.
홈페이지 www.nafec.or.kr
www.pust.or.kr
이메일 neafound@hanmail.net
<이병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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