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포기 하세요

2010-12-28 (화) 12: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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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석환 목사 /실버스프링, MD

내 나이가 그리 많지는 않지만 그래도 청춘과 가깝다고 할 수는 없다. 아무래도 청춘에게 어울릴만한 감동이나 흥분이 전만 못하니 지는 해 쪽으로 가까이 와 있음을 부인하지 못한다.
어느새 캘린더는 마지막 달로 들어왔고 1년 동안 써야할 시간을 다 써버린 느낌이다. 그러니 조석으로 보는 거울 앞에서 “얼굴은 사라지고 세월만 남았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세월이 쏜살과 같다는 말을 저절로 실감한다는 뜻이다. 그런 생각이 반드시 좋은 건 아니지만 그렇다고 나쁘다고만 할 수도 없다. 가는 세월과 그 세월의 복판에 서 있는 자신을 관조하며 산다는 것은 젊은 날에는 좀처럼 소유할 수 없었던 또 다른 은혜이기 때문이다.
이 나이에 가는 시간과 오는 시간 속에서 갖는 감동은 무엇일까. 그 느낌을 무어라 딱 꼬집어 말할 수는 없지만 아마 어떤 초조로움, 어떤 슬픔 비슷한 덩어리가 아닌가 싶다. 그것들을 흐르는 시간의 갈피 속에 넣으면 마치 ‘좋은 콜레스테롤’로 축적될지 모른다. “이러면 안 되는데, 더 소망스럽게 살아야지” 다짐하면서 관조의 계절인 겨울로 들어선다. 어느 분은 말했다. 실패가 죄가 아니라 포기가 죄라고. 그렇다. 정말 포기할 수는 없다. 이 겨울에 힘은 들어도 봄에 다시 일어날 결심을 저장해야 한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이런 레토릭(修辭)에 두서없이 현혹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포기할 수 있을 때 포기하는 것도 성공의 지름길이다. 실패가 죄가 아니라면 포기 역시 죄일 수는 없다. 지금 당한 실패를 더 참담하게 만드는 것은 오히려 그 때의 그 실패 위에서 망설이는 좌고우면(左顧右眄)이 죄다.
그러므로 겨울은 포기하는 계절이다. 한 해 동안 껴안고 있었던 우유부단을 내던져야 한다. 인생을 살아오면서 겪었던 아픔이 내 발목을 잡을 때가 있다. 이해할 수 있는 거리에 있다고 생각했던 이들, 조금만 짚어보면 그래도 가깝다고 할 이웃들, 그들이 상식을 벗어나 오해의 고함을 질러댔던 그때의 그 슬픔도 잊을 수 없다. 그래도 그 무서운 얼굴들을 버려야한다. 잊어야한다. 미움과 원망의 앙금이 아직도 실패한 당신의 가슴에 남아있음에도 다시 위선의 가면을 쓰고 추운 바람이 사정없이 부는 거리로 나가지 마라. 차라리 그 힘들고 어려운 사랑을 포기하는 것이 현명하다. 아직 준비도 안 된 당신의 마음을 들고 알량한 ‘선한 이웃’의 구역질나는 얼굴을 만들지 마라.
사람보다 개나 고양이가 더 좋아진다는 말이 아니더라도 짐승보다 못한 인간의 비열함과 기만 속에서 당신에게 맞지 않는 옷을 입고 ‘사랑’이라는 미명 때문에 이 계절을 스스로 어둡게 해서는 안 된다.
그래서 겨울을 마지막 계절이라 하지만 자칫 마지막을 놓치고 손수건만 흔드는 계절이 될 수도 있다. 일그러진 얼굴의 인간이 푸념하듯 말했다. “꼭 착하게 살아야 하나요? 꼭 사랑을 베풀어야하나요? 이렇게 나목이 흔들릴 정도로 바람이 몹시 부는 날에는 차라리 공원이나 해변에 가서 노래나 실컷 부르고 싶어요.” 이 분이 노래를 부르는 공원과 해변으로 하나님은 급하게 가실지 모른다.
자신 없는 사랑을 포기하고 성취를 포기하고 어깨를 짓누르는 허명(虛名)의 바위를 포기하자. 크리스마스가 차비를 차리는 이 시간, 연말을 보내는 거창한 계획도 세우지 말자. 차라리 계획을 포기하고 지난 봄 여름 가을의 슬픔에서 벗어나야한다. 잘난 인생, 잘난 사람 되기를 포기하기 위하여.
shin468@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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