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있는 그대로

2010-12-20 (월) 12: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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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iger 맥주’는 싱가폴에 본사를 둔, 아시아 대부분의 나라에서 유명한 맥주며 미국이나 유럽에서도 이그조틱한 외국맥주로 꽤 알려진 브랜드다. 하이네켄이나 칼스버그와 경쟁을 하긴 하지만 그들과는 다른 아시아 브랜드로서 입지를 굳히며 세계적인 맥주로 거듭나고자 애쓰고 있는 브랜드다.

세계경제나 문화 등의 관심이 아시아로 쏠리고 있는 최근의 세계적 흐름이 ‘Tiger 맥주’에게도 긍정적인 효과가 있으리라는 것에 광고주뿐만 아니라 아시아 광고 전략과 제작을 맡은 우리 회사에서도 동의하는 바다.

팀에 합류한지 얼마 되지 않은 나를 비롯한 몇 명을 위한, 최근 3~4년간의 Tiger 광고 및 마케팅에 대한 브리핑에 참관하는 내내 든 한 가지 질문은 “그럼에도 왜 모든 모델은 서양인들인가. 그것도 백인들로만…”이라는 것이었다.


대답은 예상했던 대로 ‘서구 인증’이란다. 백인들이 등장해야 좀 더 그럴싸해 보이는, 좀 더 나은 브랜드처럼 보인다는 얘기다. 미팅에 참석한 백인 영국인 디렉터는 지난 몇 년간 싱가폴에서 일할 때 이미 여러 번 들어 알고 있다며 고개를 주억거린다.

한국 드라마에는 이런 설정이 흔히 나온다. 쿨한 주인공들은 대부분 미국에서 학교를 나왔으며, 영어를 유창하게 하면 한국어를 잘 못해도 멋있게 그려진다. 그리고 그들은 삶이 힘겨워지면, 또는 더 나은 삶을 위해 서구세계로 떠나거나, 반대로 그곳에서 돌아오곤 한다.

말레이시아는 1957년 영국 식민지로부터 독립을 했다. 19세기 초부터 지속된 영국의 지배는 100여년도 훨씬 지나서야 끝이 났다. 그런데 정말 그 지배는 끝이 난 것일까. 경제적으로 여유가 되는 집안의 아이들은 여전히 영국으로 유학을 가고, 조기 유학이든 대학이든 그곳으로 가지 못한 이들은 여행이라도 꼭 가보고 싶어 한다.

검은 피부에 두꺼운 입술, 염소 가죽을 허리춤에 두른 것이 전부인 아프리카의 여인들. 그들은 아랫입술에 구멍을 내어 황토로 빚은 넙적한 접시 모양의 장신구를 그 구멍에 끼운다. 또 다른 여인은 가운데 아랫이빨을 빼고 아랫입술 바로 아래에 구멍을 내어 이빨이 빠진 자리와 그 구멍 사이로 못을 꽂는다.

또 다른 젊은 처자들은 입술을 검게 만들기 위해 수십 개의 바늘로 만들어진 바늘 뭉치 덩어리에 숯을 발라 입술을 콕콕콕 오랜 시간 찌른다. 고통으로 눈물이 사정없이 흐르지만 참는다. 이 모든 것들이 그들에겐 아름다움이다. 최근에 본 모 방송국의 아프리카를 다룬 다큐멘터리에서 본 장면들이다.

무엇이 더 아름답고, 무엇이 더 우월하고, 어떤 언어가 더 훌륭하며, 어떤 피부색이 더 쿨한 것일까. 우리는 과연 무엇을 기준으로 판단하고 살며, 그 기준은 과연 어디에서 온 것일까. 왜 우리는 있는 그대로를 보고 생각하고 느끼지 못하는 걸까.

그 기준들은 짧은 시간을 살아온 내 경험과 교육, 넘쳐나는 미디어들에 의해 심어진 이미지들의 연속, 그리고 사회 전반으로부터 받은 영향일 것이다. 수천, 수만 년의 역사에 비추면 손톱 만큼에도 미치지 못할 시간. 그럼에도 한순간도 쉬지 아니하고, 재고 판단하며, 무엇이 더 옳다 가치를 부여한다.


그것은 또다시 피해의식이나 자격지심으로, 아니면 동전의 반대 면인 우월의식으로 귀결될 뿐이다. 내가 아프리카 여인의 뚫어진 입술을 보고 아름답다고 느끼진 못한 건 결국 내 머리 속에 새겨진 아름다움에 대한 위상(僞像) 때문일 것이다. 뚫어진 구멍에 못을 꽂으며 짓던 그녀의 웃음, 스스로 아름답다고 여기며 수줍게 짓던 그 미소가 진정 아름다움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삶의 어느 한 순간이라도 있는 그대로의 나와, 있는 그대로의 당신을 불 수 있는 눈을 가지고 싶다.


김진아
광고 전략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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