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내가 먼저

2010-11-24 (수) 12: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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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누구라 할 것 없이 다 자기 입장을 고집하며 산다. “내 생각만 옳고 내 경우만 바르다.”는 것이다. 내가 주장하는 것을 동의해줘야만 괜찮은 사람이고 상대방의 생각이나 의견은 안중에도 없다. 한걸음 쯤 양보하면 모든 게 풀릴 터인데도 그 양보를 하지 못한다.
남이 무슨 마음으로 나를 대하는가, 지금 저 말은 왜 하는가, 배려가 없다. 이렇듯 편협하기 짝이 없는 우리 인간들을 정말 하나님께서 창조하셨는지 의심스러울 때가 없지 않다. 어느 시인이 이런 글을 썼다. 음미할만한 내용이다.
“나는 잘한다고 하는데 그는 내가 잘못한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구나.”
“나는 겸손하다고 생각하는데 그는 나를 교만하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구나.”
“나는 그를 믿고 있는데 그는 자기가 의심받고 있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구나.”
“나는 사랑하고 있는데 그는 나의 사랑을 까마득히 모를 수도 있겠구나.”
“나는 고마워하고 있는데 그는 은혜를 모른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구나.”
“나는 아직도 기다리고 있는데 그는 벌써 잊었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구나.”
“나는 이것이 옳다고 생각했는데 그는 저것이 옳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구나.”
이 글은 어떤 특정한 사람에게만 해당 되는 게 아니라 우리 모두가 읽고 깊은 곳에 새겨야할 내용이다. 이런 글을 쓰는 나도 예외가 아니다. 다 내 주장 내 생각 때문에 비틀어지는 관계들이 얼마나 많은가. 그 사람은 내게 야속한 마음을 품고 있는데 나만 잘났다고 우기다가 한평생 매듭을 풀지 못하고 간다. 진실은 숨겨 놓고 거짓된 말과 몸짓만 나누다가 그렇게 헤어질지 모를 일이다.
한국군인들 앞에서 연설중인 한 미군 장군이 청중의 분위기가 어색하자 농담을 했는데 그 농담을 한국인 장교가 통역을 하게 되었다. 그러자 청중 모두가 크게 웃으며 그 다음 이어지는 연설에 호의적인 반응을 나타냈다. 통역하기 어려운 영어가 조크나 농담인데 장군은 자기의 농담을 완벽하게 통역한 장교를 칭찬했다. “내가 한 조크가 별 볼 일 없는 얘기인데 청중 반응이 아주 좋았다. 당신 통역이 정말 훌륭하다.” 통역이 웃으며 대답했다. “사실은 그 순간 장군께서 청중 모두가 크게 웃어주기를 바라는 것 같아 일단 모두 웃어 달라고 부탁했습니다.”그의 말을 듣고 장군은 박장대소를 하며 그 장교의 뛰어난 통역에 감탄했다는 일화이다. 장군이 그 때 농담을 했다는 것은 가라앉은 분위기를 바꾸기 위한 표현이니까 농담을 그대로 통역하기 보다는 일단 웃어달라고 부탁했다는 것이다. 장군의 입장과 의중을 파악한 통역의 재치였다.
살아가는 일상에서 서로의 의중과 뜻을 잘 파악하며 인간관계를 맺고 사는 일이야말로 뛰어난 삶의 지혜일 것이다.
내가 먼저 손을 내밀자고 자주 말하지만 우리는 모두 내 고집에 막히고 내 입장만 이해되기를 바라다가 남이 내민 손을 잡지 못한다. 특히 교회를 다닌다는 교인들이 더 이해심이 부족하고 자기주장에 가려 남을 보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신에게 가까이 가기 위해 인간과 너무 떨어져 있다.”라는 비아냥거림을 면치 못한다. 내가 먼저 헤아리는 마음으로 내민 손을 인간이 잡지 않으면 그때 신이 내 손을 잡아 줄 것이다.


신석환
목사 /실버스프링, M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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