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원거리 투표

2010-11-18 (목) 12: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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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리 멀리 떨어져 있는 사람에게도 투표권을 부여하고 있는 곳이 있다. 텍사스다. 텍사스 주 의회는 97년 우주에 떠다니는 텍사스 주민들도 이메일을 통해 투표할 수 있는 법을 통과시켰다. 휴스턴 존슨 우주 센터에서 일하는 주민들이 우주 정거장에 거주하는 동안에도 투표권은 박탈할 수는 없다는 것이다. 극소수지만 유권자의 한 표를 중시하는 텍사스 주 정부의 배려가 돋보인다.

텍사스 수준까지는 아니지만 미국 내 대부분의 주는 우편 투표를 허용하고 있다. 주요 투표일이 공휴일로 지정되는 한국과는 달리 미국에서는 대통령 선거일도 쉬지 않는다. 직장 때문에 혹은 여행을 떠나거나 몸이 아픈 사람들을 위해 집에서 투표를 할 수 있는 길을 열어 놓은 것이다. 소위 부재자 투표다. 가주의 경우도 지금은 총 투표의 20~30%가 부재자 투표일 정도로 우편 투표는 인기가 높다.

주에 따라서는 아예 모든 선거를 우편 투표로만 하는 곳도 있다. 태평양을 바라보는 워싱턴과 오리건 주가 그렇다. 워싱턴 주는 1993년부터 시험적으로 선거를 우편 투표로 하기 시작했는데 이것이 주민들로부터 좋은 반응을 얻자 지금은 39개 카운티 중 피어스 카운티 하나를 빼고는 우편으로만 투표를 한다. 주민들은 투표용지에 기표한 후 이를 우편으로 부치거나 곳곳에 설치돼 있는 투표함에 넣으면 된다. 전체 투표의 88%가 우편 투표라고 한다.


유럽도 거의 대부분의 국가가 우편 투표를 허용하고 있다. 요즘은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인터넷 투표까지 인정하는 곳도 있다. 네덜란드와 스위스는 외국에 있는 국민들에게 인터넷으로 투표를 할 수 있게 했고 에스토니아는 거의 모든 국민에게 국내에서도 인터넷으로 투표할 수 있는 선택권을 주고 있다.

반면 걸핏 하면 인터넷 강국을 외치면서 인터넷 투표는 그만 두고 우편 투표도 허용하지 않는 나라도 있다. 바로 한국이다. 한국은 투표의 공정성과 부정을 막기 위해 이를 금지하고 있다고 하는데 말이 안 되는 이야기다. 그러면 이를 허용하는 나라는 부정 투표를 용인한다는 것인가. 게다가 한국이 언제나 우편 투표를 금지해왔던 것도 아니다. 1972년 유신 이전에는 해외에 사는 재외 국민에게 우편 투표를 허용해왔다. 그 때보다 통신 기술이 비교할 수 없이 발달한 지금 이를 막는다는 것은 선거 담당자들의 직무 태만이다.

지난 주말 시범적으로 열린 재외 국민 모의 투표 참가율은 예상대로 저조했다. 한 한인은 네바다에서 9시간이나 차를 몰고 LA 한국 영사관에 와 투표를 했다는데 이런 정성을 가진 한인은 별로 없을 것이다. 한국 정부가 지금처럼 재외 공관 투표를 고집할 경우 재외국민 투표권은 ‘빛 좋은 개살구’ 꼴이 나기 십상이다. 현 영사관 규모로는 코리아타운에 사는 한인들이 1/10만 몰려들어도 투표를 하는 것이 불가능하다. 한국 정부는 안 된다는 소리만 되풀이하지 말고 해외 한인들이 실제로 투표를 할 수 있는 방안을 내놓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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