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에도 읽었지만 다시 존 에드먼드 학캐의 저서 ‘염려를 극복하는 길’을 읽었다.
116페이지 박에 안 되는 분량이라 마음만 먹으면 한자리에서 단숨에 읽고 말 책이다.
그러나 무개가 있고 구절구절이 지워지지 않는 깊은 인상과 지혜와 교훈을 준다. 제1장에서 인류의 적 1호는 염려라고 한다. 염려란 인류의 적 제1호란다. 그것은 수만 명을 살해하고 있다. 따지고 보면 실제로 비석 위에 ‘염려로 인해 사망’이라고 쓰일 수 있는 죽음이 너무 많기 때문이다.
염려라는 말의 희랍어 어원은 두 단어가 합쳐진 것인데 ‘나누다’라는 단어와 ‘마음’이라는 단어이다. 염려는 감정을 나눈다, 그래서 감정은 안전성을 잃게 된다. 염려는 이해도 나눈다. 그래서 확신은 얕고 흔들리기 쉽다. 염려는 감지의 능력도 나눈다. 그래서 관찰을 잘못하여 심지어는 거짓될 수도 있다.
또한 판단의 기능을 나눈다. 그래서 몸가짐과 판단이 공평하지 못할 때가 많다. 그러한 판단이라 종래는 손해와 슬픔을 가져온다. 염려는 결심의 기능도 나눈다. 그래서 계획이나 목적이 잘 세워지지 못해 지속적인 성취를 이룰 수 없게 한다. 그뿐 아니라 염려는 좌절과 실패 오해와 의심 등 많은 불행의 요인이 된다. 그보다 더 염려가 비극적인 요소가 되는 것은 전염성이 강하다는 사실이다.
그래서 정신분석가들은 이 염려가 홍역이나 디프테리아와 같은 병보다도 더 전염성이 강하다고 한다. 염려가 심해지면 정신분열증과 정신착란증을 가져오기도 한다. 그뿐 아니라 염려는 심장병, 고혈압, 신경통, 위궤양, 감기, 편도선, 관절염, 편두통, 눈이 침침해짐, 소화불량증과 또한 맥박이 급하게 뛰기도 한다든가 뒷목이 뻣뻣해지게 한다. 소화가 안 되게 하며, 멀미, 변비, 설사, 현기증과 뚜렷한 이유가 없는 피로, 불면, 알레르기. 심지어 일시 마비 등의 현상을 일으키기도 한다.
염려가 이토록 해로운 것인데 의외로 이 염려의 덧에 걸려있는 사람들이 많다. 그런데 주위를 살펴보면 대게는 문제가 되지도 않을 것을 문제로 삼는 데서 문제가 되는 경우가 많은데 염려는 더욱 그런 것 같다. 염려하지 않아도 될 것을 공연히 염려꺼리로 삼아 염려들을 하고 있다.
더더구나 내일 일을 공연히 염려하고 있다. 아직 오지도 않은 미래의 일을 그것도 미리 가불 해다가 염려한다.
왜 미래를 나쁜 쪽으로만 생각하며 염려하는지 모르겠다. 훨씬 더 좋은 미래가 우리 앞에 올수 있다는 사실은 왜 기대하지 않느냐 말이다. 이제 우리 마음을 좀 바꾸어 보자 염려 대신 감사해보자. 범사에 감사에 보자. 그리하면 사람으로서는 감히 생각할 수도 없는 평화가 찾아온다.
어느새 11월이 왔다. 25일은 추수감사절이기도 하다. 세월이 참으로 빠르다. 낙엽을 바라보면서 우리 한번 인생을 생각해보자. 마음을 가다듬고 지나 온 일을 되돌아보자. 곰곰이 생각해 보자. 다 감사한 일이 아니던가.
그러니 감사하자. 감사하자. 감사하면 염려는 다 사라지고 만다.
염려를 극복하는 길은 다른데 있는 게 아니라 바로 감사하는 마음에 있다. 행복의 문을 여는 열쇠는 어제나 감사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