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그릇과 이성
2010-10-21 (목) 12:00:00
근대 서양 철학의 두 조류는 영국의 경험론과 대륙의 합리론이다. 합리론은 이성에 따라 사물을 이해해야 한다는 생각으로 프랑스가 이 사상의 중심에 있었다. 현대사에 크나큰 영향을 미친 프랑스 계몽철학은 이 사상의 연장 선 위에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프랑스인들은 대혁명을 일으킨 후 아예 기독교를 폐지하고 이성을 신으로 삼았다. 프랑스인들의 이성 숭배가 어느 정도인지 보여준다.
그러나 이렇듯 이성을 좋아하는 사람들도 자기 밥그릇이 걸린 문제에 관해서는 정신을 못 차리는 모양이다. 최근 프랑스에서 벌어지고 있는 총파업과 폭력 시위를 두고 하는 말이다. 프랑스 전역이 운송노조의 파업으로 발이 묶이고 학생들마저 거리로 뛰쳐나와 차를 불 지르고 경찰에 돌을 던지는가 하면 상점을 약탈하는 등 나라가 무법천지로 변했다. 정유 노조의 파업으로 기름이 없어 시민들이 차를 몰지 못하고 지하철을 탈래도 철도 노조의 파업으로 이마저 제대로 운행되지 않고 있다.
이 모두 프랑스 정부가 추진 중인 연금 개혁에 반대하기 위한 것이다. 지금 프랑스의 은퇴 연금은 450억달러의 적자를 기록하고 있다. 이를 방치할 경우 적자폭은 계속 늘어날 수밖에 없다. 이를 막기 위해 최소 은퇴 연령을 60세에서 62세로 늘리자는 것인데 이처럼 격렬한 저항을 받고 있는 것이다.
정부의 개혁에 반대하고 있는 것은 시위자뿐이 아니다. 한 여론 조사에 따르면 국민의 70%가 이에 반대하고 있다는 것이다. 프랑스 현 은퇴 제도가 마련된 것은 프랑스 국민들의 평균 수명이 70세였던 1960년대였다. 지금 평균 수명은 80세가 넘는다.
이에 반비례해 출산율은 계속 낮아져 아직도 바닥을 기고 있다. 은퇴자는 점점 많아지고 평균 수명은 점점 길어지고 근로 인구는 점점 줄고 IQ가 두 자리만 되도 현행 은퇴제도가 그냥 갈 수 없다는 것이 자명한데 이성을 누구보다 숭배한다는 나라 사람들이 이런 비이성적인 행동을 하고 있다.
연금 개혁을 둘러싼 소동은 프랑스만의 문제가 아니다. 사회 복지를 하늘이 준 권리로 알고 있는 서유럽 전체가 같은 처지에 놓여 있다. 시간이 가면 갈수록, 은퇴 연금 수혜자가 많아지면 많아질수록 개혁은 어렵게 될 것이다. 자기 밥그릇이 줄어드는 문제를 팔짱끼고 바라볼 사람은 별로 없기 때문이다.
대서양 건너 미국은 그보다는 조금 낫지만 안심할 상황은 아니다. 사회 보장제가 유럽보다는 덜 해 재정 부담도 덜 하고 아이도 유럽보다는 많이 낳지만 그래도 메디케어와 소셜 시큐리티의 재정 파탄은 시간문제다. 조금 일찍 개혁을 시작할수록 고통도 덜 하고 저항도 줄어들 테지만 사람들은 이를 하려 하지 않는다. 밥그릇이 걸린 문제에 이성을 잃는 것은 대서양 어느 쪽도 마찬가지인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