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집 아저씨 필은 한국전쟁 참전용사다. 그는 매 해 한 번씩 내게 봉투 하나를 전해준다. 미국 어린이를 돕는 봉사단체에 보내지는 봉투로 내 몫의 모금을 부탁하는 것이다. 그 봉투를 받을 때면 생각나는 사람이 있다. 오랜 전에, 오랜 세월, 미국에서 모금활동을 벌이면서 한국 고아원에 기부금을 전달했던 한 미국인이다.
그는 한국전쟁 중 1,100명의 전쟁고아를 살려 냈고, 전쟁 후에도 20년 동안 미국에서 그 전쟁고아들을 도왔던 딘 헤스 예비역 대령이다.
지난 7월 한국에서 ‘신념의 조인(By faith I fly)’이란 번역본이 출판되었다. 그 원본은 1956년 ‘배틀 힘(Battle Hymn)’이란 제목으로 미국에서 발간된 후, 1987년에 재발간 되었던 그의 자서전이다. 책은 첫 발간 직후인 1957년에 록 허드슨 주연의 영화(한국명: 전송가)로 제작되기도 했다.
그의 자서전엔 1950년 7월부터 약 1년 동안 한국전쟁에 참전했던 그의 경험이 상세하게 기록되어 있다. 전쟁준비가 전혀 되어있지 않았던 한국 공군에 ‘한국 전투기조종사 육성에 지대한 공헌’을 하게 된 일, 1.4 후퇴의 아수라장 속에 천여명 전쟁고아를 김포에서 제주도로 공수한 후 고아원 설립에 큰 역할을 한 사연 등이다.
한국과 관련된 그런 극적 사연들이 세계 유명 배우의 주연으로 영화화까지 되었으며 이미 오래전에 4개 국어로 번역되었으면서도, 그의 책은 한국인들에겐 오랜 세월 소개되지 않았었다. 10년 전에야 한국어 번역본이 첫 발간되었다가 이번에 재 발간이 된 것이다.
그는 공군 전투조종사로 2차 대전에 참전하여 손가락 하나로 수많은 인명을 빼앗았다. 한국전쟁이 터지자 1950년 7월에 한국에 와서 1년 간 250여 회의 전투출격을 하면서 또 다시 많은 인명을 앗았다. 인명 살상의 전선에 섰던 그가 당시 목회자였다는 사실은 본인뿐만 아니라 독자를 버겁도록 고민케 한다.
공산주의, 독재주의 저지에 대한 사명감과 그가 지닌 뛰어난 견제 능력 사이에서의 갈등. 전쟁에서 그 능력을 발휘하게 되면서 인간적은 물론, 목회자로서 신앙적으로도 겪는 고뇌. ‘한국 공군과 전쟁고아의 아버지’로 불리는 ‘그가 말하는 한국전쟁의 참상과 인간애의 메아리’ 는 독자의 고민을 조금씩 덜어준다.
56년 귀국한 그는, 이미 세 아들을 두었으나 한국의 고아 소녀 하나를 입양하였다. 그 후 20년 동안 쉬지 않고 한국전쟁 고아들을 돕기 위해 최선을 다 한 그는 한국에서 무공훈장, 소파상, 서울대 명예 법학박사 학위 등을 받으면서 금년에 93세가 되었다.
번역을 한 이동은 씨는 한 동네에 살다가 우연히 그를 알게 되고 그의 이야기에 감명을 받게 되었다. 외과의사인 그가 스스로 번역하였고 온갖 개인적 노력 끝에 10년 전 한국에서 번역본을 발간하게 된 사연이 흥미롭다. 그는 헤스 대령이 소장했던 한국전쟁 미공개 사진 40여점과 등장인물의 최근 동향까지 파악, 소개한 열성을 보였다.
몇 년 전 같은 동네의 공군대학에 연구 차 왔다가 역시 감명을 받았던 한국국방대학교 홍성표 교수가 더 많은 한국인들에게 알리고자, 10년 후인 금년에 한국전쟁 60주년을 맞아 번역본의 재 발간을 주선했다.
아주 작은 액수지만 미국 어린이의 생명을 구하는데 쓰여 질 내 모금봉투를 우체통에 넣는다. 아이들을 제주도에 공수해 놓은 후 미군부대 내에 주점을 차리면서까지 모금을 해서 그들을 돌봤던 헤스대령에게, 한국인으로서 억만 분의 일이나마 빚을 갚고 싶은 심정으로.
김보경/대학 강사·수필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