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호박꽃도 꽃이 냐니!”

2010-07-31 (토) 12:00:00
크게 작게
시카고는 지금 아주 아주 거대한 꽃밭이다. 30년 넘게 살아온 시카고에서 이렇게 황홀하게 꽃을 피워낸 계절이 있었던가? 집집마다, 거리 구석구석, 온갖 빛깔과 향기의 꽃들이 우리의 눈길과 발길을 멈추게 한다. ‘바람의 도시’라는 별명에 신물이 나 ‘꽃의 도시’로 자리 잡으려고 작정이라도 한 것 같다.

그들의 “이름을 불러 주기 전에는” 저 아름다운 것들이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는다고 김춘수 시인이 그의 시 ‘꽃’에서도 말해주고 있지만 나는 이 신통방통한 시카고의 꽃들에게 작은 답례라도 하고 싶어 그들의 이름을 찾아 야생화사전을 뒤적이고, 인터넷검색을 하면서 이름을 하나하나 익히기 시작했다.

그러나 원래 이름을 기억하지 못하는 학습장애를 갖고 있는 내게 그 일이 쉽질 않았다. 새 학기가 시작할 때 마다 학생들의 이름을 익히기 위해 쓰는 방법을 써보기로 했다. 얼굴과 이름에 의미를 부여하는 방법이다.


꽃말을 검색하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우연히 접하게 된 인터넷 사이트 앞에서 나는 무릎을 치고 말았다. 1년 365일 탄생화가 있는 것이다. 지구상에서 그 날 가장 찬란하게 빛나는 식물이라는 탄생화. 생일의 별자리보다, 보석보다 얼마나 의미 있고 아름다운가!

‘탄생화의 비밀’이라는 책에 소개된 내용이라고 주석을 단 그 웹사이트의 주인은 자상하게도 한 눈에 볼 수 있게 도표를 만들어 1월1일부터 12월31일까지 매일의 탄생화와 그 꽃의 꽃말을 보여주고 있었다.

그 사이트를 발견한 날이 마침 우리 결혼기념일이어서 그 날의 꽃과 꽃말을 찾았더니, “보리수-부부애”였다! 식구들의 탄생화를 찾아보았다.

엄마의 탄생화는 당아욱(은혜), 딸의 탄생화는 무화과(풍부), 아들의 탄생화는 해바라기(아름다운 빛), 나의 탄생화는 밤꽃(진심). 남편의 탄생화는 남편에게 비밀로 부치기로 한다. 독자들에게만 살며시 말하면 남편의 탄생화는 월귤이고 그 꽃말이 반항심이다. 쉿! 7월1일에 태어난 이들은 더 기분 나쁘다(단양쑥부쟁이-태만). 3월29일도 만만치 않다(우엉-괴롭히지 말아요). 1월1일은 스노우드롭(희망), 2일은 노랑 수선화(사랑에 답하여), 3일은 샤프란 (후회 없는 청춘)......12월31일의 탄생화는 노송(불멸)이다.

며칠 전에 시카고 꽃밭의 절정을 우리 동네에서 매주 수요일 열리는 파머스 마켓에서 경험했다. 유기농 채소들의 진열대에서 오이, 당근, 상치, 블루베리, 체리토마토 사이에서 당당히 자리 잡고 앉은 호박꽃 묶음! 다섯 송이를 묶어 만든 호박꽃다발 옆에는 5달러50센트의 당당한 가격표가 서 있었다.

호박꽃 한 송이에 1달러를 넘게 주고 사는 멋진 곳이 이 지구상에 또 있을까. 그런데 찾아보니 있었다. 시인의 마음이 그러했다. 고은 시인은 그의 시 ‘호박꽃’에서 호박꽃의 매력을 벌써 알아채고 이렇게 노래하고 있었다.

그동안 시인 33년 동안/ 나는 아들다움을 규정해왔다/ 그때마다 나는 서슴지 않고/ 이것은 아름다움이다/ 이것은 아름다움의 반역이다라고 규정해왔다/ 몇 개의 미학에 열중했다/ 그러나 아름다움이란/ 바로 그 미학 속에 있지 않았다/ 불을 끄지 않은 채/

나는 잠들었다/ 아 내 지난 날의 공포여/ 나는 오늘부터/ 결코 아름다움을 규정하지 않을 것이다/ 규정하다니/ 규정하다니/ 아름다움을 어떻게 규정한단 말인가/ 긴 장마 때문에/ 호박넝쿨에 호박꽃이 피지 않았다/ 장마 뒤/ 너무나 늦게 호박꽃이 피어/ 그 안에 벌이 들어가 떨고 있고/ 그 밖에서 내가 떨고 있었다/ 아 삶으로 가득찬 호박꽃이여 아름다움이여..


이영옥 수필가 교육학자

카테고리 최신기사

많이 본 기사